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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2DK 개미지옥 - 아토다 다카시 창작 or 번역


일전에 졸역한 'A 사이즈 살인사건'을 올리며, 반응이 괜찮으면 다음 편도 번역하겠다고 약조한 바 있습니다. 너무나도 엉망인 번역 탓에 송구스럽지만, 즐겨주신 분이 계신 듯 하여 다음 편인 '2DK 개미지옥'도 소개해 드립니다. 의역으로 가득찬 졸역이지만, 추리적으로는 전작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라 생각되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창 심심하신 분들께 위안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관리 측면에서 좀 길지만 한 편으로 올리는 점, 참고 부탁드려요.

도요코 선의 N 역에서 하차하여 서쪽의 개찰구로 나오면, 길고 완만한 오르막 언덕이 나타난다.
"아저씨, 비켜비켜! 비켜요!"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위험하잖아!"
사무라 에이스케는 다급하게 보도 옆으로 몸을 피했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그 옆을 지나갔다.
언덕의 길이는 50여 미터, 경사는 78도. 확실히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도로에서 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시키고 있겠지만, 개구쟁이 아이들이 귀담아들을 리가 없다.
"뭐, 다른 놀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무라는 석양빛으로 길게 드러워진 아이들의 그림자를 뒤로 한 채, 다시 서둘러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면 바로 묘법사다. 절에는 산호(山呼)와 사호(寺呼)가 있는 법이니, 묘법사도 정식으로는 어딘가산 묘법사라고 불러야겠지만, 사무라도 산호까지는 모른다. 똑같이 시체를 취급하는 장사라도, 수사 1과의 형사가 산호까지 알 정도로 절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 리는 없다.
산호가 있는 건 절이 분명 산 위에 있기 때문이다. 묘법사 정문까지 긴 고갯길이 이어진 것에서도 그러한 산호의 유래를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이곳 주변도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한적한 산길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회색 빌딩과 콘크리트 포장길이 무표정하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 묘법사만 홀로 고집을 부리듯 화려하게 자연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채로 가는 쪽문을 빠져나와 마당 쪽으로 고개를 내밀자, 형형색색의 튤립이 피어 있는데, 툇마루를 따라 화려한 와인잔을 늘어놓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
사무라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툇마루 쪽을 향해 말했다.
"여어. 기다렸다고."
감색 티셔츠를 입은 주지 스님이 사무라를 알아채고 고개를 까닥였다. 스님 앞에는 몇 년 전 은거한 노사가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주지 스님은 노사의 머리를 면도하는 중이었다. 노사는 치매가 시작된 후에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은 탓이겠지. 사무라와 친한, 현재의 주지 스님은 데릴사위로 노사는 그의 장인이다. 주지 스님이 수행승이던 시절부터 장인의 머리를 깎는 일은 그의 몫이었을 거다. 그 습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으로, 평소엔 멍한 얼굴을 하는 노사도 오늘만큼은 위엄을 떨치듯 고개를 바짝 세우고 있었으며, 그 뒤에서 티셔츠를 입은 스님이 얌전히 면도하는 모습은 시간이 십수 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곧 끝나니까. 2층에서 기다리게."
지켜보던 사무라에게 주지 스님이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푹 쉬고 있으라고."
사무라는 현관으로 돌아 나온 뒤, 젊은 수행승의 안내로 언제나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는 아니나 다를까 벌써 바둑판과 방석이 갖추어져 있었다. 오월의 바람이 어디선가 꽃향기를 날라와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살인사건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렇게 상쾌한 봄날 저녁 스님을 상대로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지내고 싶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
스님이 큼직한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들어왔다. 사무라 에이스케는 살인 담당 형사로는 아직 신출내기로 쉰을 넘은 주지 스님과는 부모 자식만큼이나 나이 차이가 났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이 잘 맞았다. 바둑 솜씨는 서로가 상대보다 조금 강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세상에 이렇게 멋진 적수는 없다.
"자, 시작할까?"
스님은 바둑판 덮개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잡을게요'
사무라가 선을 잡았다.
"정선."
"네."
잡은 돌을 세어보니 열한 개였다. 흑을 잡은 사무라는 가벼운 묵례 후, 우상귀에 돌을 두었다. 돌은 고급품으로, 1.5cm 정도의 두께였다. 내려놓은 돌이 바둑판 위에서 살짝 떨렸다.
"오늘은 그쪽부터 두는건가?"
"우선 이쪽 집을 벌어 놓으려고요."
"그렇군."
번갈아 열 수 정도 둔 뒤, 사무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혼잣말하듯 사건을 입에 올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시체가 마중을 나왔답니다."
돌을 집어 든 스님의 손이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이런, 벌써 교란 전술 시작인가?"
"천만에요. 이건 진짜 사건이에요. 지난주 시모키타자와에서 일어난 정말 기묘한 사건이지요."
스님은 사무라의 공격을 살짝 피하며 물었다.
"부처님은 남자였나? 아니면 여자였나?"
그때 미닫이문이 열리며 수행승이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아직 식사하기에는 좀 이르지? 술이나 한잔하자고."
'항상 죄송합니다.'
안주는 죽순조림과 참치 초무침이었다. 닳고 닳은 스님 같으니라고. 술은 흠뻑 취할 정도로 마시고, 남의 살도 매우 좋아한다. 먹을거리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정말로 밝다. 살아가는 도중에 우연히 묘법사의 사위가 되어 스님이 된 것 같은데, 스님이 되기 전에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사무라도 아직 물어본 적이 없다.
수행승이 나가자 사무라가 말했다.
"부처님은 남자입니다."
"그렇군. 그럼, 부처님은 새 신부의 옛날 애인쯤이려나."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신랑의 친구였나?"
"그렇지도 않고요."
"호오. 그럼 신랑, 신부, 그 누구와도 관계가 없다고?"
"본인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어요. 그 남자가 부부의 2DK 아파트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죽었는데 말이죠."
* 2DK : 방 2개 + Dining Room (식당) + Kitchen (부엌) 으로 이루어진 집
"아이고 부처님, 알몸으로? 그런데 이 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나저나 알몸으로 죽으면 안 되지."
스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구석진 돌을 공격해 들어갔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화요일, 5월 9일의 일입니다. 시모키타자와의 그린 아파트에 사는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이죠. 스즈미 코지와 스즈미 료코 부부로...."
"잠깐만. 아파트에 살던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아닐까?"
".….…?"
"그렇지만 맞잖아.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직 부부가 아니었으니까."
"아하하하. 스님의 억지는 당할 수 없네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두 사람이 결혼한 건 5월 3일입니다. 아파트를 빌린 것은 4월 중순이고요. 남자가 결혼식까지 혼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뒤 일주일간 규슈를 돌아보았고......."
"그리고 돌아와 보니 세상에나! 벌거벗은 남자가 죽어있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 이건 안 돼. 방심하면 안 되지. 엄청난 실수를 할 뻔했군."
스님은 입을 삐죽이며 사무라를 노려보았다. 오른쪽 구석에서 사무라의 흑과 대치 중인 백의 생사가 불안했다. 스님은 얼굴을 바둑판에 묻고 그 돌 무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무라는 어려운 사건을 맡을 때마다, 고양이가 다래나무에 이끌리듯 묘법사를 찾는다. 그래서 스님은 웃으면서 '자네는 뭔가 풀 수 없는 사건을 만나면 절에 발길을 옮기는군'이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의 방문도 마찬가지 목적이다. 이번 사건은 정말로 기묘했다. 스님에게 이야기한 대로 사건이 신고된 날은 5월 9일 화요일이었다. 그날, 시모키타자와의 번화가로부터 조금 뒷골목에 들어간 3층짜리 아파트에 스즈미 코우지, 료코 두 사람이 돌아왔다. 코우지는 굵은 체크 재킷에 밤색 바지, 료코는 꽃무늬 투피스에 연지색 모자를 차려입었다. 낡은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막 신혼여행을 끝낸 뒤, 걸음걸이도 가볍게 둘만의 스위트 홈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신랑이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도 기다릴 리 없는 방을 향해 말을 걸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인기척이 없는 실내에 공기가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신부가 이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은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결혼식 전에 짐을 나르고 청소를 하거나, 혹은 내친김에 미래의 배우자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이러쿵저러쿵 몇 번이나 이 아파트를 찾았었다. 그러나 정식 거주자로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시각은 오후 4시가 넘었다. 실내는 밝았다.
"나올 때 커튼 치는 걸 깜빡 한거야?"
며칠 전 신랑은 이 방에서 결혼식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음, 그랬었나?"
코우지는 자신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료코는 시원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그런 다음 오늘부터 자신이 지배하게 될 땅을 점검하듯 부엌을 살펴본 뒤, 욕실 문을 열었다. 순간 숨을 삼키는 듯한 기색이 흐르고, "꺄악!"이라는 비명과 함께 료코가 도망치듯 튀어나왔다.
"왜 그래?"
"사, 사, 사람이......"
료코는 남편에게 매달려 욕실 쪽을 가리켰다. 코우지는 옆에 매달아 놓은 프라이팬을 손에 들고 조심조심 욕실로 향했다. 프라이팬을 든 것은 무의식중에서도 무기가 될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기는 필요 없었다. 희미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욕실 좁은 욕조 속에서 한 남자가 목을 늘어뜨린 채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죽었어."
"정말?"
"틀림없어……. 가스가 새고 있어."
확실히 욕실에 발을 들여놓자, 날카로운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스즈미 코우지는 서둘러 욕실 창문을 열고 가스 욕조의 밸브를 잠갔다.
"누구야? 이 사람은?"
료코가 코를 막으며 물었다.
"모르겠어. 난 몰라, 이런 남자."
코우지는 숨을 멈춘 뒤, 다시 한번 욕실로 돌아가 시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34, 5살쯤 되어 보이네."
시체는 섬뜩했지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야. 도대체 누굴까..... 너는 어때?"
새신랑은 "너"라는 호칭을 약간은 어색하게 사용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료코는 두려움을 억누르려는 듯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욕실을 들여다보았다.
"몰라, 이런 사람."
"그래도 모르니까, 잘 봐."
"잘 보라니......몰라."
"좋아. 어쨌든 경찰에 전화하자."
"으....."
축복받아야 할 새로운 삶의 첫걸음은, 낯선 노출광에 의해서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죽은 남자의 신원은 알아냈나?"
묘법사의 주지 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위, 아래로 움직여 바둑의 형세를 가늠하며 물었다. 바둑은 중반의 접전을 끝내고 종반전에 진입한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전황은 사무라가 우세했다. 스님은 형세를 단번에 만회할 수단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이제 둘 곳도 없는 곳들을 상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둘 데가 없을걸요? 그 근처는."
"응. 없는 것 같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심야 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라는데, 스님의 두뇌도 그런 구조인 것 같다. 바둑을 두면서 동시에 사건을 추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둑이 별로일 때에는 아직 추리 쪽도 정리되지 못한, 암중모색의 단계이다. 아까부터 변변한 수가 없는 걸 보면 스님의 추리는 아직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한 듯 싶었다. 사무라는 이 상태에서는 적당히 스님의 비위를 맞추며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제일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했느냐 하면……."
사무라는 흑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걸 모르면 이야기가……. 안 되지...."
팟! 하고 스님의 흰 돌이 응전해왔다.
"우리 경찰은 우수합니다. 당연히 밝혀냈죠."
"그렇군."
"미나토구의, 가전 제조업체 경리부에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이름은 코이즈미 노부히코, 나이는 37세. 가족으로는 아내와 자식은 두 명…….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와 유치원 다니는 남자아이입니다. 세타가야의 공단 주택에 살고 있고, 월급은 20 수만엔 정도. 잔업 수당은 부인에게 주지 않고 모두 용돈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듯한 평범한 직장인이고, 취미는......"
"골프와 마작."
"그것도 추리인가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골프도 못 치고, 마작도 못 한다네요. 취미는 산책과 사교댄스, 그리고 패션이었답니다. 멋 내기를 좋아했다는군요."
"술은?"
"조금."
"유흥 업소는 다녔던가?
"스님이 그걸 물어볼 거로 생각해서 회사 동료에게 물어봤죠."
"잘했네. "
"직장인이라 가보긴 했지만, 부지런히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는군요. 구태여 말하자면 적당하였달까요?"
"흥, 흥......"
스님은 갑자기 화제를 바둑으로 돌렸다.
"어, 거기 그런 수가 있었나?"
"이쪽 돌은 덕을 좀 본 것 같죠?"
"이미 대세에 영향은 없나."
"그런 셈이죠."
"확실히, 여기서 끝났구먼."
"그런 것 같네요."
"유감이군. 이번에는 내가 졌네. 잠시 모습을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늘었는걸? 수사는 대충 하고 바둑책을 읽으면서 공부한 거 아냐? 덕분에 범인은 전부 다 놓치고 말이야."
"와, 엄청난 말씀이시네요. 스님 쪽이야말로 틈나는 대로 비밀로 전해진 전설의 두루마리를 숙독하면서 공부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아니, 환절기에는 부처님이 되는 사람이 많아서 절도 꽤 바쁘다고."
"그래요?"
계가해 본 결과, 흑집은 마흔 둘, 백집은 스물셋으로 덤을 빼도 무려 열네 집 반의 승리였다.
"아이고 망신스러워. 이건 대패야 대패."
스님은 갑자기 생각난 듯 손을 두드려 술을 추가 주문했다.
"그러면 다시 한 판 더?"
"네, 네."
첫판에서 사무라가 이기면 스님은 분해서 꼭 다음에는 이기려고 한다. 착수도 날카로워졌고, 그 영향으로 추리 쪽도 좋아진다. 사무라에게는 더 바랄 나위 없는 결과였다. 사무라는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목구멍에 흘려 넣고, 맛있게 버무린 초무침을 한 입 깨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흑으로 시작하지."
"네."
바둑돌을 치운 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스님은 흑 1, 3, 5로 시작하는, 슈사쿠 명인의 포석으로 두기 시작했다.
사무라가 손을 잠깐 멈춘 사이,
"그 살해당한 남자,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하고 스님 쪽에서 교란 전술을 써왔다.
"고이즈미 노부히코입니다."
"그래그래. 그 고이즈미와 신혼부부의 관계는?"
"그게 아무래도 확실치 않아요."
"호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남편은, 이런 남자는 전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아내 역시 이런 사람 알 리가 없다고 경찰에서 줄곧 증언하고 있거든요."
"그럼 왜 그 남자가 아파트에 있었지?"
바둑은 포석이 끝나고,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심사숙고가 필요한 중반의 공방전에 돌입하였다. 사건의 추리도 조금씩 조금씩, 까다롭고 어려운 부분을 향하였다.
"그게 문제라고요. 아파트 관리인이나 이웃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그런 남자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 고이즈미 누군가가 전에 그 아파트에 살았던 건 아니겠지?"
"맞아요. 그 부분은 정말로 아주 상세하게 수사를 진행했는데, 고이즈미 노부히코와 그린 아파트를 연결하는 것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아, 깜빡했네!
스님은 정석대로 흑돌을 놓으며 외쳤다.
"뭘요?"
"살인사건이 맞나?, 애초에, 욕실에는 가스 냄새가 났었잖아? 사고사 가능성은 없나?"
이번 한 수로 흑이 형성한 빗살 모양 세력이 백의 중요한 지점을 단절시켰다. 스님의 수는 두면 둘수록 점점 날카로워졌다.
"사고사 가능성도 있습니다. 목욕탕의 가스 욕조는 뚜껑을 닫으면 불이 꺼지도록 만들어진 물건인데, 고무관을 연결한 부분이 느슨하더군요. 그 부분에 가스 누출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하죠."
"하지만 자네 말로는 신혼부부는 아파트로 돌아가서 한동안 가스 냄새를 눈치채지 못했잖아? 작은 아파트 목욕탕에서 사람이 죽을 정도로 가스가 샜는데, 거실 다다미방에서 알아채지 못한다는게 말이 되나?"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부부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현관을 열자마자 약간 가스 냄새가 났던 것 같기도 했다 하고, 부인은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너무 놀라서 냄새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욕실에 얼마나 가스가 차 있었는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고요.".
"나중에 테스트 해봤을 거잖아. 같은 욕조로."
"물론이죠. "
"어땠나?"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는 꽤 오랜 시간, 대략 한 시간 정도 가스가 누출된다면 모르고 목욕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응, 응. 그렇지. 가스 중독은 먼저 운동 중추를 마비시키니까. 뭐지? 몸이 이상한데?라고 깨달았을 때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스님은 부처님 만드는 법도 잘 아시네요."
"그런 거북한 소리 말라고. 그것보다도 구석의 이 대마 말이야, 이 녀석도 부처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아무리 스님이라도 좀 힘들어 보이는데요?"
"그래, 그래."
스님은 다시 바둑판으로 몸을 기울였다. 사무라는 화제를 되돌렸다.
"그래서 욕실 정황만으로는 뭐라 말할 수 없어요. 목욕탕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일어난 사고사는 도내에도 매년 몇 건씩 신고되니까요."
"그럼 고이즈미 누군가 씨도 사고사라고 하는 게 어때? 경찰도 바쁠 거잖아."
"가능하다면 그렇게 처리해버리고 싶기는 합니다. 위에서도 그럴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사인도 마침 일산화탄소 중독이니까요. 하지만 피해자가 어째서 생면부지의 집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게 문제에요. 그것 때문에 최소한 저는 그렇게 간단하게 사고사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의 경찰, 민중의 지팡이로서 말이죠."
"고맙군그려."
탁! 소리가 났다. 바둑판 위의 돌이 흔들렸다. 두 번째 판은 스님의 우세로 흘러가고 있다.

시신이 발견된 그린 아파트는 콘크리트 3층 건물로 문제의 방은 306호실, 계단을 올라 안쪽에서 두 번째 방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다다미 넉 장 반쯤 되는 식당 부엌이 있고, 오른쪽 안쪽으로 가스대와 싱크대가, 왼쪽에 좁은 널빤지를 세워놓은 듯한 욕실 미닫이문이 있다. 식당 겸 부엌의 안쪽은 다다미 6장짜리 방, 그 안쪽으로 다다미 8장짜리 방이 있는데 신혼부부는 이곳을 침실로 삼으려 했는지 큰 더블베드, 그리고 막상막하로 큰 옷장이 놓여 있다. 사체 부검 결과, 사망 추정 시각은 발견된 시간으로부터 40시간에서 45시간 전, 즉 전전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의 사이이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사. 사체에 외상은 전혀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약물의 흔적도 없었다.
"자물쇠는 구석구석까지 채워져 있었겠군."
바둑은 세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판은 스님의 압승. 사무라는 도중에 돌을 던졌다.
"맞아요. 그리고 혹시 창문이 잠겨있지 않았었더라도 방은 3층이고 창문 밑은 절벽입니다. 현관 말고는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어요."
"현관문은 확실히 잠겨 있었나?"
"남편인 스즈미 코우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누군가의 옷과 신발은?
"있었어요. 욕실 미닫이문 위에 선반이 있는데, 거기에 놓인 의상 바구니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렇군."
세 번째 판은 중반까지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팬티, 셔츠, 양말, 이름이 새겨진 와이셔츠, 영국제 양복 상, 하의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습니다. 주머니에는 명함, 던힐 라이터, 테크노 시계 등. 신발은 구찌 제품으로 신발장 안에......"
"고급품뿐이네. 누군가의 지문은?"
"선명한 것은 침실에서 두 개, 다다미 6장짜리 방 하나, 부엌에서 목욕탕까지 일곱 개 정도."
"기묘하군."
스님이 과장되게 팔짱을 꼈다. 뭔가 복잡한 생각이 뇌리에 오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는 팟! 사무라의 흑집 안에 백돌을 놓았다. 세력을 새롭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신발에 붙어있는 흙은 아파트 부근의 것이었습니다."
"그렇군."
"뭔가 아시겠어요?"
"아니, 아직 아무것도……. 신혼부부 사이는?
"좋은 것 같아요. 뭐, 신혼부부는 대체로 사이가 좋지만....... 신랑 선배의 권유로 맞선을 보고 6개월의 교제 끝에 결혼. 당사자들은 물론 양가 부모님들 모두 좋은 인연이라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둘이 죽은 남자를 모른다는 게 정말이겠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정성 들여 수사했지만, 고이즈미와 부부, 구리고 그린 아파트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저도 부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확실하겠지."
"이거 참, 송구스럽네요."
"죽은 고이즈미는 어떤 사람인가?"
"평범한 직장인인데, 여자관계는 깔끔하지 못한 편입니다. 4년에 한 번꼴로 부인을 울렸거든요."
"올림픽 같은 남자잖아."
스님은 자신의 농담을 즐기듯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바둑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정말 별난 사건이구먼."
"예, 뭐......"
"죽은 남자의 회사는 그래, 경기는 괜찮았다던가?
"최근 몇 년 동안의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요."
"그래?"
스님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사건을 생각하고 있는지 바둑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사무라 쪽도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다.
"좋아."
생각을 마친 스님은 굳은 결심을 한 듯, 사무라의 흑 세력을 비집고 장렬하게 돌을 내려놓았다. 묘수였다. 백에게도 위험한 수였지만, 흑으로서는 도무지 뾰족하게 응대할 방법이 없는 멋진 수였다. 무리해서 장렬한 싸움을 시작하더라도, 결과는 흑의 패배임이 눈에 보이듯 뻔했다.
"아! 굉장한 묘수네요. 완전히 당했습니다."
"아니야, 이쪽도 약점이 있어."
그러나 스님이 승리를 확신했다는건 말투로도 잘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스님의 추리도 막바지에 이른 게 틀림없다.
"사무라"
"네."
"자네, 피아노 칠 줄 아나?"
"아뇨, 음악은 전혀 재능이 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자네 아파트에서는 피아노를 쳐도 되나?"
"예, 일단은요. 피아노를 치든, 방망이를 두드리든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해 본 적은 없지만요."
"그럼 그린 아파트는 어떨까?"
"글쎄요......"
"그린 아파트에서 피아노를 쳐도 되는지,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되는지, 이 점을 조사해 주게."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기묘한 질문이 사건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무라는 검은 수첩을 꺼내 스님의 질문을 적었다.
"아무래도 바둑은 이것으로 끝이군요."
스님의 한수로 반상 위의 모든 싸움은 끝났다. 계가해보니 백의 일곱 집 반 승. 종반전에서 스님의 수가 절묘했던 덕분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사무라가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니, 아니. 정말 운이 좋았다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건 쪽 말인데...."
"네, 네."
스님은 뒤섞여 있는 돌들을 색깔별로 골라낸 뒤, 손끝으로 좌우로 나누며 말했다.
"신혼부부 아파트 침실......"
"예......?"
"거기 옷장 서랍......"
"네?"
"거기에 자석에 달라붙는 게 몇 개나 들어 있을까?"
"그걸 조사해야 하는 거군요."
"맞아. 내친김에 죽은 고이즈미 누군가 씨. 이 사람은 텔레비전 영화 따위를 보면서 자주 졸지 않았는지, 부처님 부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그리고 사건이 있었던 306호실, 베란다에 러닝머신이 놓여 있었는지, 커다란 화분은 없었는지......"
"글쎄요. 그건 분명히......"
"일단 알아봐 달라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그린 아파트 306호실에 살았던 여자 중에서는 누가 수학을 제일 잘했을 것 같은지......"
"네? 그런 거 물어본다고 알아낼 수 있을까요?"
"뭐, 괜찮아. 아무튼 물어보라고."
"관리인이나 이웃을 만나서 어떻게든 대답을 모아보겠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해서 수학을 제일 잘할 것 같은 여자를 알아내면, 그녀를 만나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여자를 만나서 개미를 좋아하는지 물어봐 줘."
"개미라니……. 그……. 저…. 설탕에 꼬이는 그거요?"
"그렇고말고."
"점점 모르겠네요"
"그렇게 불평하지 말고 한번 해 보라고."
"물론 물어보고말고요. 다른 건 없나요?"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오늘은 그 정도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알아낼 수 있겠나?"
"글쎄요."
사무라는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적은 수첩을 쳐다보았다.
"모레, 이틀 후 점심때까진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그거 딱 좋군그래. 나는 그날 2시 즈음까지는 잠깐 본업 쪽 일이 있어서 외출하지만, 3시 이후에는 완전히 비어 있거든. 또 바둑을 두러 오라고. 오늘은 내가 이겼지만, 모레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저는 항상 살인사건을 떠안고 다니기 때문에 바둑에 집중하는 건 어렵단 말입니다."
"천만에. 나야말로 자네가 힘든 숙제를 가져오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다고."
"그럼, 이번의 숙제는 모레 무사히 해결될까요?
"글쎄, 그건 모르지."
지금 여기서 스님의 추리를 물어봤자 말해줄 리가 없다. 모든 것은 모레의 즐거움. 사무라는 그때까지 스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탐문과 조사를 해 올 수밖에 없다.
"정말 귀찮게 해드렸습니다."
"조금만 더 붙잡고 싶긴 하지만, 자네도 바쁘잖은가."
"그럼 실례했습니다."
현관을 나서자 부드러운 바람이 또 어디선가 농밀한 꽃향기를 실어 온다. 사무라는 향긋한 냄새를 가슴 가득히 담으며 긴 고갯길을 내려갔다.

이틀이 지나고, 스님에게 부탁받은 조사를 모두 마친 사무라는 약속한 3시에 맞춰 묘법사로 이어지는 언덕을 올라갔다.
"아저씨, 위험해요!"
그저께와 같은 개구쟁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언덕을 내려왔다. 사무라는 아이와 지나쳐 절의 입구를 통과했다.
"실례합니다."
"시간을 딱 맞췄군."
스님이 감색 줄무늬 옷을 입은 채 현관으로 나왔다. 지금 외출에서 막 돌아온 것 같았다.
"모처럼이니까 한 판"
"네."
사무라는 한시라도 빨리 스님의 입에서 범인으로 점찍은 사람이 누구인지 듣고 싶었지만, 묘법사 주지 스님의 두뇌는 언제나 바둑돌의 움직임과 함께 활동을 개시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바둑을 두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는다.
"자, 오늘은 기껏해야 한 판이겠네."
스님이 선을 잡은 결과, 사무라가 흑이었다.
"글쎄요. 과연 어떨지....."
"어때, 부탁한 조사 쪽은?"
"네, 다 조사를 마쳤습니다. 만족하실지 어떨지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아니, 아니, 천만에."
"우선 피아노는 말이죠."
"그래."
"치는 건 금지입니다. 뻐드렁니에 쭈글쭈글한 아줌마로 엄청나게 짜증나는 스타일인 아파트 관리인이 신경질적으로 답하더군요. 벽이 얇아서 이웃에 폐를 끼치니까 악기류는 절대 사절! 이라고요."
"개,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금지지?"
"아, 그렇습니다. 잘 아시네요."
"왠지 그런 느낌이 드네."
"그리고 다음에는......"
사무라는 주머니의 수첩을 꺼내 들었다.
"맞아, 맞아. 양복장 서랍에 자석에 달라붙는 게 몇 개 들어 있는지......"
"맞네 "
"스님의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조사해 왔습니다. 손톱깎이, 가위, 양복장 열쇠, 부서진 시계, 클립, 회사 배지, 금속 빗, 안전핀, 샤프펜슬의 이상 아홉 개가 자석에 붙었습니다. 샤프펜슬은 플라스틱이지만 연결 부분이 쇠로 되어 있어서 붙더라고요. 대충 이 정도입니다."
"수고 많았어."
"그다음에 죽은 고이즈미 노부히코가 TV를 보면서 자주 졸았는지 여부였죠? 이건 부인에게 물어봤어요."
"아, 4년마다 눈물을 쏟았다는 올림픽 부인?"
"맞아요. TV를 보면서 선잠 자는 건 항상 자기였으며, 남편은 졸지 않는 쪽이었다고 대답하더군요. 하지만 곧바로 이런 질문이 수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따가운 눈총과 함께 쏘아붙여서 혼났습니다."
"그건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조사한 건……."
"이봐, 자네 차례야."
"아, 고맙습니다."
사무라는 스님만큼 편리한 이중구조식 두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바둑 쪽에는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다음은 베란다에 러닝머신과 화분이 있는지였죠?"
"그래. 맞아."
"스님에게 그걸 들었을 때, 나도, 어라?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모르니까 조사해 봤습니다. 그런데....."
"베란다가 없었어?"
"맞아요. 아예 베란다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베란다에 러닝머신이든 화분이든 놓을 방법도 없죠. 창밖에 있을 수 있는 건 공기와 유령뿐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정말이에요? 바둑처럼 억지 부리시기 없습니다."
"바둑 쪽도 억지 따위는 부리지 않는다고. 어차피 요즘은 이기기만 하니까 억지 부릴 기회조차 없잖은가?"
"어, 그랬나요?"
"이론보다 증거. 이 수는 어떤가?"
스님이 둔 수에, 사무라 오른쪽 세력이 갑자기 약해졌다. 묘수였다.
"이건......"
"괜찮았지?"
"음....."
절묘한 수를 보니, 스님의 뇌세포는 최고조로 향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조사 중에서 제일 어려웠던 건, 예상대로 지금까지 306호실에 살았던 여자 중에 누가 가장 산수를 잘하는지였습니다."
"산수가 아니야. 수학이라고."
"아, 맞네요. 하여튼 이웃 등을 조사한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3년 정도 전에 이사 간 미야오 씨라는 젊은 부인이 가장 잘하는 거로 결론났습니다. 이분은 약사 면허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이과 전공이라면, 당연히 제일 수학을 잘했을 거라는 이유죠."
"그러면 그 젊은 부인에게, 개미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는가?"
"네, 찾아가 물었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권투 선수 말인가요? 라고 되묻더군요."
"무하마드 알리와 착각했군."
* 일본어로 개미는 '아리'
"네, 그래서 권투 선수가 아니라, 곤충인 개미 이야기라고 했더니,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라고요."
"그 여자는 매력적인 외모에, 두 살쯤 된 아기가 하나......"
"세상에, 맞아요! 스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팟! 스님이 돌을 한층 더 강하게 바둑판 위에 내려놓았다.
"그 여자가 범인이니까"
"정말요?"
사무라는 아연실색하며 스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동기는? 어떻게 살해한 거죠?"
"본좌는 억지를 잘 부려잖나.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는 없지."
"억지는 농담이었습니다만... 빨리 알려주세요."
"자네 말을 하나씩 하나씩 듣다 보면, 이쯤에 범인이 숨어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
"자 보라고. 죽은 남자에게는 아무런 외상이 없고, 구두에는 아파트 부근의 흙이 묻어 있다고 했지?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죽은 누군가 씨는 덩치가 상당히 큰 데다가 306호실은 후미진 곳에 있고 창문은 높아. 이런 걸 종합해보면, 누군가 씨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306호실에 왔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해."
"그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사교댄스를 좋아하고, 패션을 좋아하는 멋쟁이고, 여자 문제로 4년에 한 번꼴로 아내를 울리는 남자가 한밤중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파트를 방문했다는 것은……. 소모산 (作生)!"
스님이 웃으며 선문답의 표어를 외쳤다.
"즉, 여자겠죠."
사무라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어. 306호실의 실제 거주자들은 한창 신혼여행 중. 그렇다면, 이 방에 들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유력한 건 관리인이겠지. 하지만 관리인은 고이즈미 누군가 씨가 도저히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짜증나는 쭈글쭈글 아줌마였어. 맞지?"
"네."
"그렇다면 그다음 후보는 306호실의 이전 거주자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이사할 때 방 열쇠는 관리인에게 돌려주지만, 그 이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여벌 열쇠를 만드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건 그렇죠."
"그린 아파트는 피아노를 쳐도 안 되고,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런 아파트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어."
"그렇군요."
"그렇다면, 306호실에는 지금까지 몇 명의 젊은 부인이 살았으며, 그 부인들이 아이를 낳은 뒤 어디론가 이사를 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해. 또 요즘 젊은 부인들이 남편 몰래 남자 친구를 만들고 있을 확률은 약 8%라고 하지."
"정말입니까?"
"아하하하. 주간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매력적인 부인이라면 좀 더 비율이 높을지도 몰라."
"음, 확실히 그 젊은 부인, 미야오 유키에 씨라고 합니다만, 상당한 미인이었습니다."
"경찰이 이상한 관심 가지지 말라고."
"아이고, 이거 참, 잘 알고 있다고요."
"그 젊은 부인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고이즈미 누군가 씨를 알게 되어 불장난을 시작했던게 아닐까? 사교댄스를 추는 댄스홀에서 만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고이즈미 누군가는 별로 좋은 남자는 아니었어. 대단한 악당은 아니지만, 남의 약점을 잡은 뒤 협박하여 용돈을 갈취하는 정도의 범죄는 저질렀을 거야. 목욕탕 선반에 놓인 영국제 양복, 신발장의 신발은 경기가 별로인 회사에 다니는 월급이 20수만 엔인 월급쟁이에게는 사치스러우니까. 미야오 유키에 씨도 이 남자에게 협박을 당했겠지."
"그게 살인의 동기였을까요?"
"아마도. 마지막까지 몰린 나머지 살의를 품은 거야. 3년 전에 살고 있던 아파트의 열쇠를 이용할 생각을 한 뒤, 간단한 조사를 통해 지금 사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떠나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운다는 걸 알아내고는 범행에 이용한걸세. 결혼과 신혼여행은 널리 알리는 경사이니만큼, 이웃에게 물으면 곧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그 틈을 타서 남자를 유인해서 죽인 거야."
"그랬군요."
"남의 아파트를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속이고는, 남편이 출장을 갔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만나고 싶다는 정도만 말해도 플레이보이 고이즈미 누군가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 조심을 거듭하여 몰래 숨어들어왔을 테지."
"그리고 그곳에서 목욕을 시키다가......"
"그건 아니야. 가스 목욕 중에 사고로 죽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계획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드는 건 어려워. 일단 가스가 새는 상태에서 욕조 안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죽지 않는단 말이지. 그러나 자네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에게는 조는 버릇이 없었어. 욕조에서 자는 사람은 상당히 선잠을 좋아하는 사람일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하잖은가. 설령 졸았다 해도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약물 흔적도 없고."
"과연, 일리 있네요."
"게다가 범인으로서는, 혹시라도 이웃들이 가스 냄새를 눈치채면 큰일이란 말이지. 그런 위험한 짓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어떻게...?"
사무라는 남은 돌을 바둑판 위에 떨어트리며 말했다.
"어라? 돌을 던지는 건가?"
"네, 도저히 승부가 안 되네요."
"음,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러면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고이즈미 누군가가 살해된 건 목욕탕이 아니었어.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는 더 좁고 밀폐된 곳이 필요했어. 바로 침실 옷장이지. 옷장 열쇠는 서랍 속에 있었지? 자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말이야."
"자석에 달라붙는 게 뭔지는 그래서 조사를 시키신 거군요. 그런데 남자는 옷장 안에 왜 들어간 거죠?"
"여자가 시켜서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려는 찰나! 여자가 남편이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겠지. 방은 3층이고, 창문 밑은 절벽이야. 도저히 도망칠 방법이 없어. 숨을만한 베란다도 없는 데다가 알몸이고. 그 상황에서 고이즈미 누군가가 아닌 그 누구라도, 여자가 빨리 옷장으로 들어가요! 라고 말하면 들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지. 그 뒤 옷장 문을 밖에서 잠가야만 열 수 없다는 설명을 들으면, 밖에서 자물쇠를 채워 버려도 수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테고."
"스님, 보고 오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하하, 그럴 리가. 하지만 이 추리는 대충 맞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그건 미야오 유키에 씨에게 자네가 개미 좋아하느냐고 물어봤기 때문이지. 그때 그녀가 새파랗게 질렸다고 했잖은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추리가 맞다는걸 롹신했다네."
사무라는 고개를 저었다. 개미를 좋아하면 어떻다는 것일까. 스님은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도시가스 냄새는 강하니까. 수면제라도 먹이지 않는 한 그렇게 쉽게 큰 남자를 죽일 수는 없어. 옷장 안에 숨어 있어도 가스 냄새가 나면 남자는 난리가 날 테고. 그래서 범인은 냄새가 없는, 순수한 일산화탄소를 맡게 할 생각을 한 거야. 그 뒤 사고사로 수습되기를 꿈꾸며 시체를 욕조에 집어넣은걸세. 잘만 됐더라면, 뭔가 이상한 사고사로 대충 마무리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
"그런 걸 생각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실행까지 하려면 확실히 화학에 대해 지식이 필요해. 그래서 수학을 잘하는 여자라는 힌트로 찾아보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약사님이 등장하시더구먼."
"예"
"실험실에서 일산화탄소를 만들려면, 황산과 개미산을 혼합하면 된다네. 옷장 뒤에 구멍을 뚫어 튜브라도 꽂아두면, 쉽게 안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어. 형사에게 갑자기 개미를 좋아하느냐는 말을 듣고 그 부인이 새파래진 것은 그 탓이야. 그녀는 개미라는 말을 들으면, 개미산이라는 특별한 약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거든. 범행이 인상 깊게 남아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여자가 범인이라는 걸 확신한거야. 뭐, 일부 세세한 점은 내 추리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욕실에서 가스 중독을 시키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뒤, 내 추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네...."
스님은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건 신식 개미지옥이네요."
"그거 딱 어울리는 말이구먼. 이제부터 그린 아파트로 가서 옷장 뒤에 구멍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그다음에는 그 여자, 미야오 유키에 씨를 다시 한 번 방문한 뒤, 옷장 뒤에 개미구멍이 있었다고 말해 주라고. 매력적인 여성분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몹시 기대되는구먼."
놀랍게도, 스님의 추리는 이번에도 적중했다.

마시는 즐거움 - 마시즘 : 별점 2.5점 Book Review - Food or 구루메

마시는 즐거움 - 6점
마시즘 지음/인물과사상사

마시즘이라는 필명으로 각종 매체에서 연재되던 글들을 엮은 음료 관련 잡학 문화사 서적. 각 항목별로 해당 주제에 관련된 음료의 역사와 문화, 기타 잡학 상식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음료의 폭도 넓습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커피, 차, 와인, 맥주는 물론 콜라와 환타, 소주, 커피믹스와 갈아만든 배, 심지어 사약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고 있으니까요.

특징이라면 깊이있는 역사 전반이라기 보다는, 주로 재미있는 일화나 에피소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방식도 SNS의 형식을 빌린다던가, 유행어를 사용하는 식으로 젊은 감각에 맞추어져 있고요. 덕분에 쉽게 읽을 수는 있습니다. 이런게 요새 트렌드구나!라는걸 느낄 수 있던 것도 좋았고요.
짤막하지만 꽤 괜찮은 정보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심포지엄 Symposium'이 원래 그리스에서는 '함께 마시다' 라는 뜻이라는거 처음 알았네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 '회식'이었던 셈이지요. '많이 마시되 취하지 말라'가 모토였다니 정말 회식 문화와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그 외에도 럼 Rum의 어원이 '과격한 소동'을 뜻하는 Rumbulion에서 유래되었다던가 (독해서 마시면 과격한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 유명한 커피하우스 블루 보틀의 이름은 콜시츠키가 17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에 차렸던 커피 하우스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 오란씨의 이름은 오렌지와 비타민 C의 결합이라는 등 명칭 관련된 정보들은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음료 자체에 대한 정보도 건질만 합니다. 코카콜라의 맛이 국가별로 다르고, 특히 멕시코 코카콜라는 콘시럽대신 사탕수수를 사용해서 더욱 달콤하고 향긋하다는 것처럼요. 무엇보다도 정식품의 베지밀과 같은, 순수 한국산 음료에 대한 정보들은 독보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이야기는 다른 해외 도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연하게도, 깊이있는 정보는 그닥입니다. 환타 이야기처럼 다른 책들을 통해 이미 접했거나,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았고요. 또 저처럼 기존에 인터넷으로 이미 접했던 독자에게 새롭게 제공되는 부분이 없다는 점 역시 아쉬웠습니다.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구입해서 읽을 필요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마시즘의 컨텐츠를 읽으실 수 있다면, 책을 별도로 구입해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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