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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건배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그대 눈동자에 건배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단편집. 2011년 ~ 2016년 사이 발표되었던 비교적 신작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네요. 고민 없이 단순한 아이디어에 의지해 써내려 간 작품이 대부분이며 추리물 성향의 작품들의 경우도 트릭의 깊이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등 정교한 맛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꾼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쑥쑥 읽히는 맛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네요. 수록작 전체를 평균한 제 별점은 2점으로, 작가의 팬이시라도 구태여 찾아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각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 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첫날의 결심>>
새해 첫 날, 신사 참배를 가던 다쓰유키와 야스요 부부는 신사에서 속옷만 입은 남자가 기절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 남자는 군수로 머리에 둔기로 타격을 입고 쓰러진 상태였다. 신사로 향하는 길은 외길로 부부는 아무도 보지 못한 상태에다가, 군수의 옷은 멀리 떨어진 공원에서 발견되는 등 사건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외길로 갇힌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일종의 밀실 트릭이 사용된 작품이라 할 수 있고, 피해자의 옷이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사용된 불가능 범죄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한 의외성을 지닌 작품은 아닙니다. 신사로 오는 동안 범인을 보지 못한 이유는? 당연히 신사에서 아직 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범인은 경찰이 조사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에 숨어있다는 것이 진상이니까요.
그래도 이 밀실 (?) 트릭은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설명되는 편이나 군수가 옷을 벗은 이유부터는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한 여인을 두고 교육장과 벌인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벗고 뛰었다는데 전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옷을 벗고 뛴다고 더 빨리 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구두를 언급하며 신발 정도를 벗었다면 모를까, 속옷만 입고 뛴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돼요.
또 결말도 문제에요. 사실 다쓰유키와 야스요 부부가 자살을 결심한 상태였으며, 이 둘이 이러한 황당 사건을 접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인데 구태여 붙일 필요 없는 사족이었습니다. 시리즈 물도 아니고, 독자가 전혀 알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정보였어요.

추리 작가로서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솜씨가 엿보이기는 하나 여러모로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추리작가 미네기시는 1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옛 애인 쓰다 치리코의 연락을 받고 밸런타인데이에 재회한다. 둘은 옛 이야기, 그의 작품 이야기를 식사와 함께 이어가는데 갑자기 치리코는 옛 동아리 멤버였던 후지무라 에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미네기시가 10년 전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진상을 치리코가 풀어나간다는 작품. 증거는 치리코가 후지무라 에미의 친구인데 그녀에게 전해들었던 습작 줄거리가 미네기시가 발표한 소설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즉, 작품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죠.

설정도 진부하고 전개 역시 일방적인 치리코의 주장밖에 없지만, 사건 당시 데이터가 삭제되었던 후지무라 에미의 노트북을 복원하여 이를 가지고 미네기시의 범행을 증명하는 과정이 잘 짜여져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몰래 훔쳐내고 노트북 데이터는 지웠지만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는 미네기시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이 핵심인데, 앞 부분에 살짝 등장한 미완성 휴재작 <<심해의 문>> 이 여기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아이디어가 고갈된 미네기시가 마지막으로 미완성작까지 손대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으며, 그 마지막 데이터는 그녀가 살해당한 날 저장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정황 증거이기는 하나 이 정도면 결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미네기시가 아무리 별로라도 10년이나 프로로 활동했다면 최소한의 실력은 쌓았을텐데 너무나 무능하게만 그려진 것, 마침 치리코가 후지무라 에미의 친구였다는 점, 또 그녀가 경시청 형사라는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 등은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작위적이라 좀 더 고민이 필요했지만 이 정도면 단편으로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사부로는 딸 마호의 결혼 소식을 듣고 놀라지만, 상견례 자리에서 사돈 식구를 보고 더 놀란다. 사돈 가문은 큰 종합 병원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던 것.
엄한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 한 자신의 아내를 기억하고 있는 사부로는 사돈 부인의 엄격함을 알게 된 후 마호에 대한 걱정이 심해지는데...

사부로의 죽은 아내 가나코는 시집살이가 힘들었지만 여러가지로 극복하고 즐기고 왔다는 것을 "히나마쓰리" 인형 장식과 사진을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일상계 작품.

일상계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는 한데 이 작품 속 히나마쓰리 인형 장식을 가지고 한 장난은 추리라고 보기에는 너무 사소합니다. 지나치게 일본적인 소재라 우리에게 와 닿기 어렵다 치더라도 어차피 약간의 장난에 불과하거든요.
게다가 이 정도 만으로 "모든게 다 괜찮았고 앞으로 잘될거다" 라는 식으로 끝내는 결말도 안이했어요. 얼마나 시어머니가 괴롭혔으면 이렇게까지 몰래 숨어서 사진을 찍었을까 하는 애처로움이 생겨나야 정상일 것 같은데 말이죠.
제가 딸 자식을 가진 부모라 그런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나"는 우연히 나간 미팅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같은 화장을 한 모모카를 만나 사귀게 된다. 하지만 둘은 애니메이션 관련 이야기만 나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것은 철저히 감춘 탓으로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나에게 모모카는 자신에 대해 알면 실망할 것이라며 콘텍트 렌즈를 뺀 모습을 보여준다.

표제작. 머리에 염색을 하고 빠칭코와 경마장을 출입하는 "나" 가 도박 중독자가 아니라 '미아타리 수사' 에 종사하는 경찰관이었다는 반전을 선보이는 작품.

그러나 '미아타리 수사' 라는 수사 방식에 대해 조사한 뒤, 지명수배자의 특징을 기억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이 수사 방법의 포인트가 나이를 먹어도, 살이 찌거나 빠져도, 성형 수술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눈매라는 것에 착안하여 별 생각없이 작품으로 써 내려간 티가 물씬 납니다. 모모카가 지명수배자였다는 것을 알아내는게 콘텍트렌즈를 뺀 후였다는 장면 때문이에요. 아무런 고민 없이 그냥 "눈매" 를 숨기기 위한 방법으로 콘텍트렌즈를 선택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콘텍트렌즈 착용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정도만으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연에 기반한 작위적인 설정이 반전의 핵심인 탓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제 별점은 2점. "미야타리 수사" 에 대해 알게 된 것 정도만 수확이네요.

<<렌털 베이비>>

에리는 장기 휴가동안 휴머노이드로 가상 육아 체험을 하게 해 주는 사업에 등록한 후, 파트너 아키라와 함께 육아에 고군분투하며 모성애에 눈을 뜬다.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이 조금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호시 신이치쇼트쇼트 SF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휴머노이드를 이용한 가상 육아 체험 서비스 사업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더해 아키라 역시 가상 육아 체험을 위한 계약 파트너에 불과했으며 에리가 60살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반전 덕분입니다.

특히 반전이 핵심이에요. 아들 대신 가짜 로봇, 휴머노이드를 아들로 양육한다는 흔해빠진 이야기와는 다르게 육아를 체험하는 서비스를 내세운 것도 신선하지만 이 반전으로 인하여 모든 걸 가상 체험하게 만드는 미래 사회가 어떨지 잠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정말로 귀찮고 힘든건 단지 잠깐의 체험만으로 끝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이만큼 기술이 발달하면 귀찮고 힘든건 로봇이나 기계가 대신 해 주겠지만 말이죠...

이처럼 고전 쇼트쇼트에 대한 경의와 함께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장난 시계>>
"나"는 무직으로 모종의 브로커를 통해 수상쩍은 일을 가끔 수행하고는 한다. 이번의 의뢰는 한 맨션에서 흰색 조각상을 가져 오는 것. 하지만 "나"는 집을 뒤지다가 집 주인을 죽이고 마는 사고를 저지른다...

특정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아무런 상관없는 누군가에게 의뢰한다는 설정은 흔하지만 이를 의뢰인이나 피해자 시점이 아니라 수행 당사자 시점에서 묘사한게 조금 특이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손목의 시계가 범행 시간에 딱 맞춰 고장나 멈춘게 이상해서 그것을 풀어 가져간 후 직접 고쳐서 되돌려 놓았다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가져갔다고 하더라도 그걸 고쳐서 되돌린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아요.
이 불필요한 행위로 꼬리가 밟혀 체포되는 결말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장난 시간이 범행 시각이 아니라 그날 아침이었다는 약간의 트릭인데 비록 10 여분 정도 차이가 났다고는 하더라도 이건 너무 지나친 우연이에요.
흰 조각상이 사실은 특수한 방법으로 굳힌 마약이라는 설정도 불필요했습니다. 그냥 상자 하나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될 것인데 뭐 이리 과한 설정을 넣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 점수는 1.5점. 상식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행동, 있기 어려운 기이한 우연을 밀어 붙인 결과물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사파이어의 기적>>
미쿠는 신사에 나타난 떠돌이 고양이와 친해진 후 "이나리" 라는 이름을 붙여주지만 이나리는 트럭에 치여 죽게된다.
한편 "사파이어"라 불리우는 파란색 털을 가진 페르시아 고양이가 파란색 후손을 원하는 브리더들 사이에게 전설과 함께 떠돈다....

파란색 털을 가진 고양이와 고양이 뇌 이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품. 딱히 재미가 있다거나 새롭지는 않습니다. 고양이일 뿐 있을 수 없는 색을 가진 무언가를 다룬 작품은 흔하니까요. 대표적으로는 <<너버스 브레이크 다운>> 에서의 블루 앤젤 피쉬가 떠오르네요.
또 미쿠와의 인연을 뇌 이식으로 가져가는 전개도 딱히 필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야기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순종 페르시안이 아니라 잡종만 파란색 털을 가진다는 마지막 반전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범 이하의 범작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배우 쿠로스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연상의 각본가 야요이를 살해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알리바이 장치를 마련한 후 그녀를 찾아간다.

쿠로스의 범행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는 도서 미스터리. 하지만 쿠로스가 범행을 위한 독극물을 야요이로부터 훔쳐냈다는 형편없는 설정이 발목을 잡습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이 작품에서도 독극물의 분량을 확인한 후 야요이가 쿠로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살을 위장한 자살을 감행하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해 그를 놓아주고 잘 해주는 척 하다가 뒷통수를 치며 자살한다는 야요이의 행동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범행을 목격했다면 거미줄처럼 그를 더 옭아매어 아예 피를 쪽쪽 빨아 먹는게 상식적이잖아요? 실제 관계를 맺었던 다른 배우들을 파멸시켰다는 그녀의 전례를 비추어 본다면 이 정도로 상처를 입고 죽을 결심을 한다는 건 설득력이 낮죠. 그녀의 자살로 그녀가 얻을 건 단 한 개도 없고요. 쿠로스가 파멸한다고 해도 죽고 난 다음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서 추리로 전개되는 과정은 나름 흥미진진하지만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의 핵심인 위장 자살의 설득력이 너무나 낮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수정 염주>>
나오키는 지역 유지 와타라이가의 외동 아들이지만 안락하고 편안 생활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7년 동안 고군분투하던 와중에 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누나의 전화를 받는다...

추리 장르와는 전혀 관계 없는 작품. 와타라이 가에 전해 내려오는, 타임 슬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수정 염주"를 가지고 풀어낸, 일종의 일상계 판타지입니다. 타임 슬립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 떠오르는군요. 마찬가지로 아버지 신이치로가 이 힘을 사용한 건 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마지막 결말을 통해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 는 희망찬가를 전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늙은 나오키가 염주의 힘으로 아버지 회사를 뛰쳐나오기 전으로 돌아가 얌전히 회사를 물려받아 다닌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인 결말이 될 것으로 생각은 하지만, 뭐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겨둬야겠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작품도 재미있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늑대를 요리하는 법 - M.F.K 피셔 / 김정민 : 별점 3.5점 Book Review - Food or 구루메

늑대를 요리하는 법 - 8점
M.F.K 피셔 지음, 김정민 옮김/다른목소리


미국에서 태어난 M.F.K 피셔, 메리 프랜시스 케네디 피셔가 쓴 음식과 삶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 1942년 발표된 고전인데 제목의 "늑대" 는 "문가에 늑대가 나타났다" 라는 문구에서 따 온 것으로 '위기 상황'을 의미합니다. "늑대를 요리하는 법" 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의미하고요. 이러한 의미 그대로 미국 대공황기 등 여러 힘든 시기를 보낸 저자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됩니다. 그 중에서도 물자, 재료가 부족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 먹는지에 대한 방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생선, 고기, 빵, 수프 등 생각할 수 있는 주요 재료별로 상세하게 실려 있기도 하고요.

다양한 내용 중에서 우선은 눈물겨울 정도의 절약 비법이 눈에 뜨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불 없이 요리하는 방법입니다. 건초 통을 감싸고 그 안에 음식을 넣은 뒤 통의 뚜껑을 덮는 방법인데, 발효(?) 열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또 당시 통화 기준이기는 해도 50 센트로 차리는 극빈 요리에 도둑질, 야생에서 얻은 식재료를 이용한 <<나는 자연인이다>> 스타일 요리, 심지어 음식 뿐만이 아니라 대체 커피라던가 술값 아끼는 비법으로 가짜 보드카 제조법까지 등장합니다. 가짜 보드카는 물 1쿼트, 글리세린이나 설탕 1 작은술, 레몬 1개의 껍질, 오렌지 1/2개의 껍질을 20분 동안 아주 약한 불에서 끓인 뒤 알코올 1쿼트를 더한 후 바로 뚜껑을 덮고 식힌 뒤 걸러서 만든다고 하는데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진짜 위기 상황, 예를 들어 "등화관제" 상황에는 가스가 전기보다 빨리 끊긴다는 등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려 동물들을 위한 절약 방법도 관심 가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되고요.

하지만 그냥 안 먹고 안 쓰는게 아니라 아무리 어려워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저자의 철학이 가득 담겨 있는, 궁상맞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리 레시피도 많습니다. 단순한 미국 가정 레시피가 아니라 유럽, 심지어 간장과 누룽지 등 중국에서 비롯된 재료를 사용하는 요리를 가르쳐 주는 식이라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파리식 양파 수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만족을 주며 언제나 위로가 되고 마음에 남는 소박한 수프라는 미네스트로네 레시피는 꼭 따라해 보고 싶더군요. 집이나 시장에서 가장 흔하고 싼 재료로 만드는 게 최고라니 더할 나위 없죠.
가끔 집에서 궁상을 떨며 혼술을 즐기는 이와마 소다츠가 떠오르는 메뉴들도 좋습니다. 이런 저런 선반에 채운 통조림들을 결합해서 먹는 레시피들 처럼요.

이러한 레시피, 조리법 외에도 커피 찌꺼기를 바늘 겨레 안에 넣으면 바늘이 녹슬지 않는다, 핸드로션 대신 버터 포장지를 손에 문지르고 나서 버리라는 등의 생활 꿀팁도 많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시대 착오적인 내용들, 거기에 더해 말을 타다가 생긴 타박상은 말 바로 옆 축축한 잔디를 상처 부위에 고정한다는 말도 안되는 민간 요법이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당시 시대상을 느끼게 해 주어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을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글의 흐름 속에서 저자의 여러가지 철학을 강하게 피력하는 장면들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개인적으로는 어린이도 사람이기 때문에 맛, 질감, 자극 면에서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것을 얻기 위해 "생각하며" 먹게 해야 한다는 교육 이론이 와 닿았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잘 먹는다" 는 중국 속담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는 현명하지 못하다!" 고 일갈하는 장면은 <<맛의 달인>> 의 지로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이렇게 재미있고 한 번 읽어보면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흰 빵을 증오하는 저자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에서 직접 빵을 구워 먹기 까지 해야 하는지 등 내용 모두를 동의하기는 어려우며,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더라도 많이 낡았고 번역 문제겠지만 문체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도 요리와 레시피를 소개함에도 불구하고 도판이 하나도 없다는 큰 문제는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3.5점인데, 도판과 번역만 충실했더라도 별점 4점이 아깝지 않았을 거에요. 요리, 음식 들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현대를 무대로 <<좀비를 요리하는 법>> 과 같은 개정판이 나와 주어도 좋을 것 같군요.

덧붙여,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았는데 이 책 발표 시점에서 저자 나이가 34살이라는 것에 크게 놀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의 잔소리 섞인 "옛날에는 이랬지" 스타일의 글들로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빅토리아 시대 할머니가 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대체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을 한 건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또 아래와 같은 평균 이상의 미모도 놀랍고요.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볼 저자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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