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궁예 (소설과 역사의 경계에서) - 이재범
그다지 사료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궁예에 대한 책으로 예전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가 절찬 방영중일때 인기가 갑자기 폭발했던 시기 출간된 책인 것 같습니다.

제목 그대로 궁예와 그의 고려, 혹은 마진, 혹은 태봉이라는 국가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시각에서의 고찰과 연구가 돋보입니다. 그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어 궁예가 장보고 세력과 어느정도 혈연 관계가 있지 않았나 의심해 보는 것에서 시작해서 궁예가 장군으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 얽힌 당시 국내 정세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의 국가 형성에 이은 당시 국제정세 및 중국과 거란과의 외교 관계 분석, 마지막으로 궁예의 몰락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논하고 있으며 여기서 전설이나 드라마등에서 흔히 보여지던 정형화된 악인이 아닌, 스스로 나름의 능력과 힘을 지녔던,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대동방국을 꿈꿔왔던 인물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물론 왕건과 견훤등의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잘 짜 맞추고 있어서 흡사 일본의 전국시대의 이야기나 무용담을 보는 듯한 재미도 느껴집니다. 저자가 견훤-궁예-왕건을 노부나가-히데요사-도쿠가와에 비유한 것은 좀 지나치다 생각은 들지만요.^^

하지만 저자가 워낙 궁예를 좋게만 보려고 노력한 점이 너무 많이 눈에 띄이고, 주장하는 내용들도 워낙 사료가 없고 유적지마저 비무장지대에 있기 때문인지 뒷받침되는 증거가 거의 없어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 약점입니다. 전설과 구전되어 오는 여러 자료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역사서로서의 가치가 너무 많이 떨어져 보이더군요. 물론 저자도 학자 출신답게 왕건이 "반란"을 일으킨 세력이므로 정당하게 선왕을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부분을 상당히 자세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어느정도의 근거는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고증된 역사서에 비한다면 "역사" 보다는 저자의 창작과 판단이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 있는, 소설에 가까운 책으로 보이네요.

그래도 궁예라는 인물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노력은 마음에 듭니다. 후삼국 시대에 대한 보다 철저한 시대 구분 및 연구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도 동의하고요. 훗날 비무장 지대에 있는 유적이 연구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또 보다 많은 근거와 자료,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면 보강하여 보다 탄탄한 역사서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by hansang | 2005/10/25 17:22 | 역사관련 독서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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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JHAN at 2005/10/25 17:39
한마리 울부짖는 '타이거'가 나왔던 [진훤이라 불러다오]와 오십보백보.
Commented by rumic71 at 2005/10/25 17:42
방영당시에 관심을 좀 끌뻔하다가 묻혀버린 책이죠. 뭐 요즘 원균관련서적이 재발행된거나 비슷.
Commented by hansang at 2005/10/26 16:18
DJHAN : 그 책보다는 오바가 좀 덜하지 않나?
rumic71 : 그렇다고 보기에는 저자가 궁예 관련 논문으로 일찌기 학위를 땄더라고요. 뭐 오십보 백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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