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살인 - 에드먼드 크리스핀 / 박현미 (자유추리문고 21) 추리 / 호러 관련 독서

저버스 펜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로 뭔가 다른 일에 손대고 싶어 시골마을인 샌포드의 하원의원에 입후보하여 그 지방에 장기 체류하게 된다.

고즈넉한 시골마을에서 자신도 잘 모르는 선거 운동의 광풍에 휘말리면서도 그는 우연히 여관에서 만난 옛 동창생이저 런던 경시청 경감인 붓시에게서 그 지방에서 벌어진 공갈-독살 사건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를 도와주려하나 외려 붓시가 살해되고 범인으로 그 마을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병자 엘핀스턴이 지목되지만 펜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런던 경시청에서 파견된 경감 험블비와 마을 경찰서장 울프와 힘을 합쳐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의 수사를 도우면서 그는 점차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급기야 마지막 연설회에서 유권자들을 아둔하다고 외치며 투표도 하지 말라는 충격적 연설을 하여 당당히 탈락할 결심을 하지만 그의 색다른(?) 연설에 매료된 유권자들에 의해 당당히 당선되고 펜은 절망한다. 그래도 그는 선거 직후 진범을 추리하여 그를 체포하게 되는데...

최근 자유 추리문고가 이상하게 잘 구해지네요. 한동안 눈씻고 찾아봐도 없더니... 이번에 읽은 책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즐거운 살인" (Buried for pleasure) 입니다. 저자의 다른 작품인 "사라진 완구점"도 무척이나 읽고 싶은 작품이긴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유명한 작품이자 대표작이죠. 전에 포스팅 한 "동서 미스터리 100"이라는 리스트에도 94위로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제목이 "즐거운 장례식"이라 이 작품이 같은 작품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구하게 되어 무척 반갑기도 하네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킬러물인 단편 "샤프 펜슬"을 읽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좋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어렵게 구한 만큼이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단 이 작품은 왠지 P.D 제임스 여사의 "어떤 살의"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골 마을을 무대로 정신병원이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점 이외에 왠지 모르게 영국적이고 영국 시골스러운 내용 전개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뭐 이러한 부분은 시골마을과 그 마을의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진 인간 군상들, 그리고 이들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것이 정통 영국 고전 추리물의 맥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겠지만요.

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이자 이 작품만이 가진 매력은 왠지 모르게 작품에서 풍기는 "유쾌함"때문입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 이어지는 연쇄살인,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과 흉폭한 범죄라는 굉장히 공포스럽고 무서운 상황이 유머스럽게 포장되어 있거든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가 한니발 렉터가 아니라 자신이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월슨이라고 믿는 노출증 환자라는 설정, 그리고 모든 사건이 시끌벅적한 선거극과 하나같이 유머스러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제목처럼 정말 즐겁습니다. 또한 이야기 전개도 장편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사건과 에피소드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읽는 동안 계속 흥미를 붙잡아 놓을 수 있게끔 하고 있고요. 추리적인 장치나 복선도 적당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작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절묘한 솜씨 덕이겠죠.

또한 명성에 걸맞게 추리적인 부분도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등장인물이 굉장히 적어서 범인이 한정된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범인이 정말로 의외의 인물이며, 사건에 있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요소를 가지고 범인을 추리해 내는 곳에서는 무릎을 칠 정도거든요. 범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내세운 인물이 사실은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는 유력한 단서가 너무 일찍 나오기는 하지만 진범의 정체는 마지막까지 오리무중이라 흥미진진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증거와 단서, 맥락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고전적이면서도 무척이나 깔끔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또한 주인공 탐정역의 옥스퍼드 영문학교수 저버스 펜이라는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이러한 시끌벅적한 분위기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제일 웃기지 않는 캐릭터라 처음에는 호감이 별로 가지 않았는데 읽어 나갈 수록 독특한 매력이 풍겨져 나와 역시 시리즈 캐릭터로서의 존재감을 어필합니다. 마지막 선거 연설 장면에서의 명연설 ("유권자는 우둔한 인물이고 정치가들은 모두 미쳤다")은 그 장면만 따로 읽어도 될만큼 압권입니다. 작품의 스타일을 볼때 약간 모스경감 스러운 주인공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하지만 상당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세계 추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정통 영국 추리물의 충실한 적자로서 저같은 고전 팬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자유 추리문고 치고는 번역도 괜찮은 편이니 구하실 수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목사관의 요정의 정체인데... 누구 알고 계신 분 안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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