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콕 탐정 - 에밀 가보리오
에밀 가보리오의 전설적인 추리소설이 드디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추리 역사상, 거의 추리소설의 아버지쯤 되는 작품으로 그동안 역사적인 가치로나 호기심으로나 항상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국일미디어에서 발행되었네요. 물론 저는 당장 샀습니다. 책도 묵직하니 무려! 500페이지 가까운 장편으로 기대하게 만들더군요.

내용은 파리의 한 술집에서 격투 끝에 살해된 세 남자의 용의자로 한 남자가 현장에서 체포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데 20대 중반의 르콕이 등장합니다. 르콕은 상관인 제브롤 경감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현장검증과 수사를 통해 체포된 사나이 메이가 사실은 뭔가 배경이 있는 인물이라는 추리를 하고 세그뮬러 예심판사와 동료형사 압생트, 그리고 일종의 범죄 자문위원(?)인 타바레 등의 도움으로 진상을 밝혀 내게 됩니다.

이 책은 추리소설의 역사상에서 포우 직후에 발표된, 19세기에 쓰여진 초창기 추리소설입니다. 이 작품을 비롯해서 여러편의 작품을 발표한 가보리오는 현대 추리소설의 형성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셜록 홈즈도 르콕 탐정을 “그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존재야” 라며 폄하하는 장면이 있지만 코난 도일 경 스스로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아무래도 초기 작품 답게, 좀 지루하고 맥이 빠지는 편입니다. 초반부의 사건 현장만 분석해서 추리하는 르콕의 모습은 홈즈와 굉장히 유사하고, 나름대로 색다른 재미도 주지만 갈수록 사건 자체의 트릭 보다는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 목적을 두고, 순전히 탐문수사에 의존하는 르콕의 수사 방식은 지루합니다. 르콕의 모든 행동들은 홈즈가 비판할 정도로 어설프기도 하고요. 마지막 부분에서 용의자를 도망치게 놓아주고 용의자의 뒤를 쫓는다는 방식도 순진하지만, 드러난 용의자의 정체를 몰라 고민하다가 탐정 타바레의 자문으로 쉽게 해결되는 결말부 같은 것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뭐 그 타바레의 추론 자체도 그다지 놀라운 것도 아니라서 더 맥이 빠지네요. 이렇다면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경찰 수사” 소설이라고 한다면 적당하겠습니다.

원래 이 책은 2부작으로 2부째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과거사, 그리고 그것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는데 2부는 추리소설보다는 뒤마식의 모험 소설에 가까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구성은 셜록 홈즈 장편 “주홍색 연구”나 “4인의 서명” 등에서 전반부에 사건이 벌어지고 후반부에는 범인의 회상으로 이루어지는 구성과 유사한 것 같은데 이 당시 추세였을까요?

초기작으로의 미덕과 역사적인 가치는 분명하지만, 그만큼 조금 어수룩하고 순진한… 현대독자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점 또한 많습니다. (무려 100년도 전에 쓰여진 책이니까요)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겠지요. 이 책도 조금만 더 짧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뒷부분의 정태원씨의 해설은 언제나처럼 좋았습니다. 차후에 국일미디어 책들이 많이 나오면 뒷 부분의 해설만 따로 모아서 책으로 내 놓아도 될 것 같더라고요.

저로서는 이런 책이 나와주니 고맙기만 하다! 쪽이었지만, 사실… 많이 팔릴 것 같진 않네요^^ 그래도 꾸준히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욕심일까나..)
by hansang | 2004/01/15 15:05 | 추리 / 호러 관련 독서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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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oirot at 2004/01/15 16:06
잘 읽었습니다. "물론 저는 당장 샀습니다"라는 대목이 인상깊습니다.^^ hansang님은 진정한 애호가!!! 말만 애호가인 저는 아직 구입하지 못했습니다-_-;; 서점에서 뒷부분 해설은 읽어보았는데 과연 멋진 해설이더군요. 찰리챈 해설에도 진귀한 사진도 많고 볼게 많더군요.정태원님 요새 좀 주춤하시지만 연륜이란건 정말 무섭습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4/01/16 09:41
"나 같으면 하루면 충분한 걸 르콕선생은 반 년이나 걸린단 말씀이야" 라는 게 홈즈의 발언이었지요.
Commented by hansang at 2004/01/16 10:04
poirot : 아뇨.. 저도 사실 말만 애호가입니다.^^
rumic71 : 아 그랬었나요? 좀 자세히 읽어볼 것을...어쨌건 홈즈가 잘난척하던 부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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