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ストロボ (2003)) - 심포 유이치 / 권일영 : 별점 3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 6점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원제는 <스트로보>. 심포 유이치의 사진작가 기타가와 고지를 주인공으로 한 5편의 단편 연작입니다. 엊그제 리뷰했던 <추신>이 기대치에 못 미쳐서 다른 작품을 찾아보다가 읽게 된 작품인데 훨씬 재미있더군요.

기타가와 고지의 나이 50세 - 42세 - 37세 - 31세 - 22세 당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당시 기타가와 고지의 "현재"를 다루고 있는 특이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5편의 연작 모두 별다른 사건이 없는 인간 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수수께끼"나 "반전", 혹은 "진상"이 담겨있는 이야기라 광의의 의미로는 추리소설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작품별로 사건과 수수께끼를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은데,

50세 - <영정> :
기타가와의 상태 : 정점을 넘어 매너리즘에 빠진, 관성에 의해 작업을 하는 기계적인 상태
사건 : 20년전 기타가와 고지의 모델이었다는 여성이 갑작스럽게 영정사진을 의뢰한다
수수께끼 : 이 여성이 영정사진을 그에게 의뢰한 이유는?

42세 - <암실> :
기타가와의 상태 : 막 스튜디오를 오픈한 상업적 최전성기
사건 : 기타가와의 과거 불륜상대였던 미녀 사진작가 하루미가 등산 도중 사고로 죽는다. 그 뒤 매스컴을 통해 등산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그녀라는 의혹이 증폭된다.
수수께끼 : 결국 발견된 하루미의 카메라. 그녀가 마지막에 카메라에 담은 사진은 무엇인지? 그리고 필름이 뒤로 감긴 이유는?

37세 - <스트로보> :
기타가와의 상태 : 잘 나가는 프리랜서 작가.
사건 : 기타가와가 불륜을 저지르던 모델과의 밀회장면을 스트로보를 이용한 몰래 카메라에 찍힌다. 그 뒤 사진이 기타가와에게 배달되는데...
수수께끼 : 사진을 찍은 인물은? 그리고 기타가와의 스승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31세 - <한순간> :
기타가와의 상태 : 잡지사 계약직 사진작가로 근무하며 사진작가로 발돋움 하려고 발버둥 치던 시절
사건 : 항상 무시해 오던 선배의 놀라운 사진으로 충격을 받고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미사코와도 크게 다툰 이후, 기타가와는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 주는 발판이 되는 걸작 사진을 찍게 된다.
수수께끼 : 이 사진 뒤에 감추어진 진실은?

22세 - <졸업사진> :
기타가와의 상태 :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잦은 데모로 휴교 중이던 학교보다 스튜디오 아르바이트에 신경쓰던 시절
사건 : 대학 동기 구즈하라가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고 유품을 기타가와에게 남긴다.
수수께끼 : 구즈하라가 사고사 이전에 보였던 알 수 없는 행동들과 그 이유는?

이렇게 각 단편별로 나름의 사건과 수수께끼가 있으며, 그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추리적인 기대를 충족시켜줍니다. 줄거리만 보면 드라마에 불과한데 이렇게 추리소설로도 기능한다니 참 신기하더군요. 일상계 인간드라마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어설픈 사랑과 감동에 치중하지 않고 그야말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친다는 점도 좋았어요. 사랑도 좋지만 자기 자신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하는 속물 기타하라 코지라는 인물도 아주 현실적이고 말이죠. 인간적인 측면과 더불어 사진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의 디테일은 "내 집으로 와요"의 미키오가 연상되기도 하더라고요. 미키오도 나이가 들면서 결국 이렇게 변했겠지.

그 외에도 연작답게 인물들과 소재들이 작품별로 서로 연결되는 등 - 예를 들어 <영정>에서 기타가와가 자신의 초창기 작가시절 찍었다고 짤막하게 언급하는 사진은 <한순간>에서 기타가와를 작가로 만들어 주는 걸작사진이자 주요 소재입니다 - 한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네요. 제 베스트 에피소드는 <영정> 이며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에는 작가의 정통 추리소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기대가 큽니다!

PS : 원제가 더 마음에 드는데 제목을 왜 바꿨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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