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 도진기 : 별점 2.5점 (그러나 강추!)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순서의 문제 - 6점
도진기 지음/시공사

현직 판사이시기도 한 추리소설가 도진기씨의 단편소설. 한국 작가로는 보기 드문 정통 본격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변호사 고진 시리즈 장편 (이거라던가 이거) 은 트릭은 인상적이었지만 전개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죠. 워낙에 트릭적으로 뛰어난 점이 많은 작가이기에 차라리 트릭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단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 이 책은 그러한 저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단편집이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허나 작품별 편차가 큰 탓이지 뛰어난 작품은 한국 추리문학 역사에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한국 추리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해보자면.

<순서의 문제>
대리운전을 하는 주인공 진구는 손님에게서 원주 터미널에서 전화 한통만 걸어주면 50만원을 주겠다는 알바를 요청받는다. 의뢰를 수락하지만 이 알바의 이면에 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그것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전 법대생이자 철저한 이성주의자인 주인공 김진구가 첫 등장하여 거액이 얽힌 범죄의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협박하는 이야기. 안티히어로 스타일의 주인공 캐릭터가 독특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서 단순히 원주에서 전화를 건다는 사실과 집주소, 주변 탐문에서 시작하는 개인적인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전개될 뿐 아니라 강현의 동기인 이른바 "순서의 문제"가 적절하게 사용된 것이 마음에 듭니다. 트릭도 순간이동 트릭을 두가지나 복합해서 사용하고 있어서 풍성하고요.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시체를 이동시키는 방법의 설득력이 약간 낮다는 점과 마지막 강현을 협박하는 장면이 좀 작위적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단점은 사소할 뿐이며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대모산은 너무 멀다>
진구가 여자친구 혜미가 목격한 지하철의 수상한 남자의 행적을 가지고 순수한 추리를 펼쳐보이는 안락의자 탐정물.
추리적으로 논리정연하고 그럴듯하기는 하나 정말로 그것이 사실로 맞아떨어졌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더군요. 자기 얼굴이 할퀴었다고 손을 잘라서 버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정말이지 몇명이나 될까요? 그것도 잘 모르는 산으로 버리러 간다... 솔직히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진구의 추리는 그럴듯하나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마무리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추피추의 꿈>
진구가 혜미와의 마추피추 여행에서 비행기를 놓친 뒤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계.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려우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동으로가나 서로가나 결국 목적지는 같다는 콜럼버스적인 마인드가 돋보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티켓다방의 죽음>
해미의 외숙부가 출장 중 여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 조사결과는 자살. 그러나 보험금 문제가 있어서 혜미의 부탁과 보험금의 20%를 조건으로 진구는 타살이 아닌지 조사에 나선다.

설정부터가 독특한 작품입니다. 진구의 목적은 진상을 밝히는게 아니라 외숙부 양문요가 자살한게 아니라는 걸 경찰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니까요. 또한 그로인해 진구가 벌이는 여러가지 작전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에요. 흉기집중효과를 응용하여 목격자인 다방아가씨 유현아에게 다른 사람 사진을 보여줘 증언을 헛갈리게 한다던가, 외숙부 양문요가 첫 자살을 시도할 때 1/3 남아있던 청산가리가 시체 발견시에는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타살설을 주장한다던가 하는 식인데 경찰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그럴듯한 것들이었어요,
결국 노력이 벽에 부딪힌 뒤 우연히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진상에 접근하는 과정과 보온병을 이용한 작전 역시 탁월했고요.

단점이라면 여관주인 여춘길이 5만원권을 1만원권으로 바꾸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우연에 의지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여춘길 방에 침입했을때 관련된 단서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여춘길이 1만원권으로 바꾼 동기도 솔직히 좀 어이가 없고요. 지폐에 청산가리를 뭍힐 생각을 하느니 돈을 숨긴 장소에 숨어있다가 미행하는게 더 설득력있는 행동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마지막에 첫 등장에 보여준 지폐를 이용하여 극적 반전과 함께 독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결말도 아주 좋은, 완성도 높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신 노란방의 비밀>
살인범에게 납치당했다가 탈출한 소녀 은비의 증언은 그곳이 노란색 방이었다는 것.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의 집은 노란색과는 거리가 멀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데...

공감각을 가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소리와 시각의 치환을 다룬 소품. 제목은 거창하나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벌이는 느낌이라 딱히 와닿지는 않았어요. 외려 진구의 과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더 재미있었던, 쉬어가는 작품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뮤즈의 계시>
진구, 해미가 살인사건의 증인으로 재판정에 서게 된다. 해미의 직장동료 김주희와 그의 동거남 하성남의 집들이 파티때 하성남의 아내 선혜영이 살해된 사건에 대한 재판.

고전 황금기 걸작에 비교될만한 트릭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시체를 옮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구, 해미와 함께 있으면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라는 두가지 수수께끼를 푸는데 특별한 곳에 위치한 집과 그 집의 구조도를 잘 이용한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이 아주 돋보였어요. 결정적 단서가 되는 USB 음악 재생 아이디어는 정말 기가 막혔고요.
트릭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해서 팬에게 서비스하는 모습도 좋았고 작가의 경험을 잘 살린 법정 장면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과연 살해현장에서 시체를 옮겼다는 것을 현대 법의학이 알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이 생기기는 하나 단언컨데 이 단편집의 최고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환기통>
보석도둑을 쫓던 경비원이 살해된 사건의 진상을 다룬 소품.
진구와 해미가 처음 만나게 된 당시에 벌어졌던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트릭은 실제 사건 현장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되었더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그다지 눈여겨 볼 건 없습니다. 오히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과정이라던가 (어차피 체포되었으니까), 환기통 안에서 구멍을 내었는데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등 어색한 부분이 더 눈에 많이 띄였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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