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김명남 : 별점 4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소름 - 8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명남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강영길 : 별점 4.5점

하드보일드 삼대장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걸작. 이미 오래전, 십년도 더 전에 동서문화사 동서추리문고 출간본으로 읽어보았지만 이번에 엘릭시르에서 재출간되었기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별점 5점을 주기는 했지만 다시 읽어도 흥분과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확실히 걸작은 걸작이에요. 오히려 예전과는 다르게 범인과 진상을 알고 읽으니 색다른 재미가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죠. 루 아처가 단서를 하나씩 짚어나가며 20년전, 10년전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사가 마지막에 어떻게 범인으로 연결될지에 집중해서 읽었는데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허나 아무래도 두번째 읽는터라 제법 많은 단점이 눈에 뜨이긴 합니다. 우선은 범인이 피해자들에게 경고 전화를 하고 방문해서 쏴죽인다는 설정이 그러해요.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불필요한 행위에 불과한데 정작 이유는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나마도 헬렌과 로라 서덜랜드에게만 한 것이 이상하고요. 콘스탄스에게는 그러한 경고를 왜 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드러난 상황이라 체포되기 딱 좋은데 턱하니 "내가 너 죽이러 갈께~"라고 전화를 한다니, 이건 너무 말이 안돼죠. 꼭 전화를 제외하더라도 범행이 지나치게 운에 의지한 부분이 많다는 것도 확실히 약점입니다. 헬렌 사건만 해도 루 아처가 그곳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도 우연이고, 저드슨 폴리가 조금만 빨리 방문했어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범인 티시가 로라 서덜랜드를 어떤 시점에서 죽인다면 어쨌건 사건은 거기서 끝난다는 것도 문제에요. 헬렌이 살아있었다면 진상을 폭로했을테고, 혹 이 소설처럼 먼저 죽었더라 하더라도 티시가 더 이상 빠져나가기는 힘들었을테니까요. 주요 용의자인 돌리, 맥기 모두 어딘가에 구류된 상태이니만큼 경찰 수사가 제대로 시작된다면 로라 서덜랜드 살인 동기는 브래드쇼 부인이 가졌으리라는 점이 밝혀졌을테니 이야기는 끝이죠. 마찬가지로 헬렌 사건은 맥기를 범인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고, 아처가 수사기관에 저드슨에 대한 정보만 제공했어도 그를 옭아매어 헬렌이 누군가를 협박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었을겁니다. 이런걸 보면 사립탐정들은 정말이지 공권력의 적이에요.
여튼,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마지막에 아처가 티시의 정체를 깨닫는 반전의 힘은 강하지만 그것이 사건 해결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미 사건은 다 끝난거나 마찬가지니...

그 외에도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묘사나 설정이 분량을 제법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 헬렌이 창녀와 다름 없었다라는 증언이 대표적으로 작중 묘사된대로 과거 사건으로 아버지에게 심한말을 한 것도 그때 뿐 결국 그녀가 로이 브래드쇼 협박범이 되었다는 점은 아주 씁쓸할 뿐더러, 팜프파탈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캐릭터가 애매해져 버리고 말았네요. 차라리 돌리처럼 어린시절 겪었던 덜로니 사건에 대해 트라우마를 간직한 캐릭터로 끌고나가는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덜로니 부인이 동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산다는 것도 말이 맞지 않습니다. 재산 형성을 보면 로이 브래드쇼의 재산은 결국 부인의 재산이고, 그 재산이 합리적으로 흘러가려면 어떤 식으로든 이동이 있었을텐데 그것을 전혀 모를 수는 없을거잖아요? 아울러 덜로니 부인이 사건을 덮기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했다면, 동생 티시의 사망증명서를 미리 떼어놓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에요. 덜로니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으니 이런 식으로 조작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외려 사명증명서로 사망을 증명하면 재혼을 계획하고 있는 로이 브래드쇼에게만 좋은 일일테니,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이죠.

어떻게 쓰다보니 이상하게 단점만 잔뜩 썼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걸작은 분명해요. 서정적이면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는 독보적이기도 하고요. 맥기를 감옥의 무게에 짓눌린 성자로 묘사한다던가, 협박범에 불과한 헬렌에 대해 여러모로 가엾음을 느끼는 아처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남자는 첫 결혼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 또 여자가 더 빨리 늙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연한 교훈을 마음 속 깊이 새겨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 약간 있다는 것 정도? 언제 읽어도 여전한 흥분과 재미를 가져다 주는, 제 All-time best 10에 언제나 들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도 좋으니 더할나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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