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죽였다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내가 그를 죽였다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예 시인 간바야시 미와코와 유명 작가 호타카 마코토의 결혼식에서 호타카가 독살당한다. 이후 호타카에게 버림받은 동물병원 조수 나미오카 준코가 음독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자 그녀가 동반 자살을 위해 호타카가 먹는 비염약에 독을 섞은 것으로 세간에 알려진다. 허나 경찰의 수사 결과 그녀가 호타카의 비염약을 바꿔칠 수는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미와코는 약을 바꿔칠 수 있었던 용의자를 모두 불러모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 하는데....

가가형사 시리즈<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에 이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실험적인 시도의 작품 2탄.

일단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보다 추리적으로는 훨씬 낫습니다. 특히 '필케이스에 전혀 다른 인물의 지문이 찍혀있었다'라는 것이 스루가 나오유키의 범행을 증명한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탁월해요. 필케이스에 독약을 넣고 필케이스 자체를 바꿔치기한 것이라면, 당연히 호다카와 접점이 없는 다카히로는 용의자에서 제외되고 남은 두명인 스루가와 유키자사 중에서도 앞서 호다카 전처의 짐을 맡게 되었다는 스루가의 발언 등으로 범인은 스루가가 된다는 것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공정하게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본격추리물이라 할 수 있죠. (물론 미와코가 다카히로에게 케이스를 넘겨주었을 가능성도 있고 유키자사 가오리가 호다카와 관계가 있었을 때 케이스를 확보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만큼 경찰에서 수사를 보강할 필요는 있을테지만 독자는 그냥 넘어가도 될 터이고요.)
그 외에도 나미오카 준코가 사망한 곳을 밝혀나가는 디테일 - 상품 전단지에 쓴 유서, 머리에 묻은 잔디, 샌들에 묻은 흙, 짝이 맞지 읺는 휴대폰 충전기....- 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실험적인 시도이기 때문일까요? 작위적이라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제법 되더군요. 우선 캡슐의 갯수에 대한 지루한 공방부터가 그러해요. 자살 시체가 놓여진 상황에서 과연 캡슐이 몇개인지 세고 있을 정신이 있었을까요? 그나마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던 스루가는 모르겠지만 방에 잠깐 숨어있던 것이 전부인 유키자사 가오리의 눈에 캡슐 갯수가 눈에 들어왔다는 것은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만해도 매일 제가 먹는 알약이 지금 몇개 남았는지 모르는 걸요. 어차피 그녀가 "여섯개 있었다"라고 증언해봤자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기도 하고요. 그냥 이래저래 억지로 갯수를 끼워 맞춘 느낌으로 핵심 트릭 (필케이스)에서 독자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네요.
아울러 준코가 캡슐을 구한 것은 금요일 오후이다, 그래서 호타카의 약통에 몰래 집어 넣을 틈이 없었다, 라는 주장 역시 뒷부분에 다카히로 혼자 1층에 있을 때 그녀가 필케이스에 몰래 독약을 집어넣는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모순이 생겨버립니다. 누가 집에 있을 때 독약을 넣는게 가능했다면 밤에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왜 이런 부분을 자세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여기에 더해 마지막 추리쇼는 작위적이라는 단점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가가 수집한 증거라면 이런 비공식적이고 비효율적인 절차 없이 스루가를 연행하여 취조하는게 더 합리적이었을테니까요. 캡슐에 집착하면서 용의자들을 닥달하는 시간낭비는 할 필요가 없어요. 뭐 이렇게 하면 소설로 만들기는 어려웠을테니 트집잡기는 좀 애매하지만 가가의 말대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세계에 가까운, 소설같은 이야기임에는 분명합니다.

용의자인 스루가 나오유키와 유키자사 가오리, 간바야시 다카히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전개도 특이하긴 하나 이들 중 한명이 범인이기에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최근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거의다 이런 방식인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범인 시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가공한다는 점에서는 <악의>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악의는 애초에 수기라는 형태를 빌린 서술 트릭물에 가까운 작품이니 훨씬 수준이 높죠.
그리고 누구나 죽이고 싶을 인간 쓰레기 호다카 묘사로 용의자들의 확실한 동기를 그리려 노력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주관적인 심리묘사 탓에 동기,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왔습니다. 스루가의 속내는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는 등 용의자들이 자기 변호에 바쁘기 때문이에요. 덕분에 전개, 묘사만 보면 간바야시 다카히로가 가장 수상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생각해보면 스루가는 흠모하던 여인이 죽었고, 유키자사는 낙태를 했기에 "죽음"이 얽혀있는데 반해 간바야시는 여동생에 대한 그릇된 애정 뿐 정작 호다카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동기면에서는 가장 부실한데도 불구하고요. 설령 동기가 있더라도 여동생의 결혼식을 망칠 인물 같지는 않아요.
차라리 동기를 드러내려면, 본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드러냈어야 했습니다. 예를들면 유키자사가 애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묘사를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덧붙이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와 재미 모두 전작보다는 낫지만 이런저런 단점도 명확한 범작입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는 이전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마찬가지로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추리소설로서 최소한의 의무라 생각되기에 이렇게 작품을 마무리한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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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방울토마토 2015/11/20 23:56 #

    밀봉페이지가 있는걸 보고, 범인을 못 찾아도 부담이 없겠다고 좋아했는데 당황했었죠.
    그래도 다시 읽어보니까 필케이스보다 캡슐에 집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게 확실히 드러나더군요.
  • hansang 2015/11/20 23:59 #

    캡슐은 정말 의도된 낚시에 불과하죠. 두번 읽기는 좀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 rumic71 2015/11/22 12:47 #

    본작과 별 관련 없지만, "여기가 소설 속 세계니까!" 라고 펠 박사가 단정짓던 생각이 나는군요. 번역이 영 이상해서 잘 파악이 안되었지만...
  • hansang 2015/11/22 23:11 #

    아예 소설 속 세계라고 등장인물들이 주장하는, 메타 픽션이라고 하는 기묘한 작품을 몇 읽어본 기억도 나네요. 하나같이 별로였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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