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의 비극 - 나쓰키 시즈코 / 추지나 : 별점 2.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W의 비극 - 6점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학 재벌 와츠지 가문의 딸 마코의 가정교사인 이치조 하루미는 마코의 박사학위 논문을 도와주기 위해 일족이 휴가를 보내는 후지5호, 야마나카 호반의 별장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날 밤, 비명소리와 함께 와츠지 요헤의 시체가 발견된다.
마코가 강간당하기 전 저항하다가 살해했다고 고백하고, 일족은 추문을 덮고 마코를 지키기 위해 외부에서 강도가 잠입한 것으로 진상을 조작하려 하는데...


일본의 여류 추리소설가 나쓰키 시즈코의 대표작. 오래전 절판본을 어렵게 구해서 읽었었는데 고맙게도 재간되었더군요. 몇년 되긴 했지만 여튼 반가운 마음에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좀 의외네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난 탓인가... 예전에는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물론 "민법 제 891조 2항"에 기초한 설정과 핵심 트릭은 여전히 괜찮긴 합니다.
* 민법 제 891조 아래에 해당하는 자는 상속인이 될 수 없다.
2. 피상속인이 살해당했음을 알고 이를 고발하지 않거나 고소하지 않은 자. 단, 그자에게 시비를 변별할 능력이 없을 때나 살인범이 배우자 또는 직계 혈족이었을 때에는 예외로 한다.

유산 상속이 진짜 동기라는 것을 숨기고 별장에 모인 일족과 관계자들이 합심하여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경찰과의 두뇌 싸움을 그린 일종의 도서 추리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전개 과정 역시 나쁘지 않았고요.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후지 5대호 지방, 그 중에서도 아사히가오카 야마나카코촌을 무대로 하여 차분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묻어나서 읽기 편했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그러나 민법 제 891조 2항의 존재가 너무 빨리 드러나며, 드러난 뒤 급속도로 전개는 힘을 잃고 맙니다. 300여페이지의 작품에서 200페이지 정도, 즉 2/3 정도 되는 부분에서 이 사실이 드러나는데, 그 뒤로는 예상 범위 내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에요. 직후 다쿠오의 조사로 "배우자, 또는 직계 혈족"은 예외가 된다는 것까지 밝혀지면서는 이 조항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인물이 단 두명!밖에 남지 않게 되어버려 더 뻔해지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범인인 와츠지 미치히코와 이치조 하루미가 1:1로 담판을 짓는 장면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1시간짜리 3류 TV용 서스펜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연상케 하는, 작위적인 퍼포먼스의 끝판왕급이었달까요. 악당이 자신에게 아무런 메리트도 없는데 진상을 주절주절 떠들며 여주인공을 죽이려 하지만 그녀를 흠모하는 백마의 기사가 나타난다. 아... 이건 대체 뭐지 싶어요. 요새는 헐리우드 영화도 이렇게까지 뻔하게는 안 만들 것 같은데 말이죠. 이전에는 별 이야기 없다가 갑작스럽게 하루미와 쇼헤이 사이에 연인 구도를 만든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요. 무엇보다도, 대체 쇼헤이는 하루미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안 걸까요? 그것도 경찰보다 빨리?
그리고 상황 자체가 말이 안되는게 와츠지 미치히코는 요시에만 잘 구슬려서 입을 다물게 한 뒤 마코의 단독 범행으로 계속 끌고나가면 됩니다. 그가 진범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요시에와 마코 뿐이니 버티기만 했다면 그의 승리는 명확해요. 이런 것도 파악못하고 하루미를 몰래 데리고가서 죽이려고 하다니, 죽어도 싸죠.
요시에가 쇼헤이를 유혹하려는 시도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누군가 (하루미) 엿듣고 있다는 전제에서나 성립하는 어처구니없는 작전이기 때문이에요. 앞서 말했듯 마코의 뒤에 있는 인물은 미치히코나 요시에 밖에는 남지 않는데 독자의 시선을 요시에 쪽으로 강제로 돌리려는 시도임에는 알겠지만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핵심 트릭만큼은 지금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는 멋진 트릭이기는 하지만 전개 등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예전의 호평에는 절판본을 어렵게 구했다는 기쁨이 꽤나 많이 개입되었던게 아닌가 싶군요.

덧붙이자면, 예전에 읽었던 모 단편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일족이 모인 파티에서 유이한 두 외부인 중 한명이 일족에게 살해당한다. 그러자 일족은 다른 한명을 범인으로 만들려 한다... 는 서늘한 작품이요. 이 작품처럼 제가 와츠지 일족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다면 이치조 하루미를 범인으로 만들었을겁니다. 그녀가 와츠지 요헤가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을 듣고 유혹하려 갔다가 요헤가 강하게 부인하고 그녀를 모욕해서 발끈해서 죽였다. 하지만 요헤의 반격으로 같이 죽게된다는 식으로요.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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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5/11/22 12:42 #

    그 시절엔 그런 구도가 넘쳐흘렀으니까요. 특히 TV수사극에서.
  • hansang 2015/11/23 08:18 #

    크흐... 유행이었던걸까요? 작가도 지금 다시 읽으면 이불킥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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