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무도회 1,2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3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가면무도회 1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가면무도회 2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번 결혼, 네 번 이혼이라는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유명한 여배우 지요코. 그녀의 다섯 번째 연인인 다다히로는 재계의 거물이자 공작가의 후손이다. 다다히로는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지요코의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의뢰한다. 그러던 중 첫 번째 남편의 1주기가 그가 숨진 휴양지에서 마련되고, 태풍이 휘몰아치던 밤 마침 근처에 있던 지요코의 세 번째 남편이 숨진 채 발견된다. 그리고 네 번째 남편마저 모습을 감추고 마는데…….
아스카 다다히로의 요청으로 사건에 뛰어든 긴다이치 코스케는 현지 경찰 히비노 경부보 등과 함께 사건을 수사해 나가면서 충격적인 진상을 알게 된다. (이상 책 소개 참조)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대장편. 1974년에 발표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가 인생 끝자락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작품은 처음이네요
사실 요코미조 세이시의 후기작은 대부분 별로였을 뿐더러 1, 2권 합쳐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라 그닥 땡기지는 않더군요. 허나 전작을 거의 다 읽었기에 숙제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아주 괜찮았습니다. 장점이 명확했기 때문이죠. 첫번째 장점은 700여 페이지를 넘는 분량이지만 비교적 쉽게 읽힐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도입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오도리 지요코의 전남편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가면서부터는 아주 흥미로와요. 조금 지루할만하면 사건이 터지는 전형적인 연속극 구조랄까, 고전적이지만 거장답게 적절히 잘 짜여져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장점이자 최고의 장점은 놀라운 진상, 그 중에서도 "후에노코지 야스히사가 사망 전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녀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정말 엄지 척이에요. 충격과 놀라움의 정도로 비교하자면 <소름>에 버금간다 생각될 정도에요. 또 이 진상이 지요코의 돈을 긁어내기 위한, 애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후에노코지 아쓰코의 음모였다는 것에서 전전 구세대 집권층에 대한 작가의 날선 비난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세번째 장점은 가루이자와라는 무대와 재벌 가문들이 얽혀있는 뻔한 설정을 묘하게 현대적으로 선보인다는 점입니다. 놀랍게도 막장 설정이 아니에요! 결혼과 이혼 좀 자주하면 어떻습니까?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모델로 한 듯 싶은데 작품 발표 시점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혼 경력은 2번밖에 없으니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 물론 억지스러운 기괴한 묘사로 (미사의 변모에 대한 것 등) 고전 변격물 성향도 엿보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거장이 자신의 스타일을 변주하여 어떻게든 현대 추리 소설의 흐름에 동참하려 한 노력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과거 프랑스에서 장 뤽 고다르 등이 주체가 되어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영화 흐름을 이끌 때 과거의 거장 르네 클레망이 "그럼 내가 진짜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지!" 라면서 <태양은 가득히>를 발표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분위기에 더해 경찰 수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을 주름잡았던 사회파의 영향력이 살짝 엿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한 탓이 크죠. 마키 교고의 시체가 기묘한 성냥개비 퍼즐 - 색맹이 유전되는 법칙 - 과 함께 발견되는 부분은 전통적인 고전 본격 추리물의 향취가 느껴지기는 했으며, 쓰무라 신지가 마키 교고의 시체를 유기한 후 지쳐서 집에 있는 위스키를 마셨는데 그 안에 청산가리가 들어있더라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많이 부족해요.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요.
단순하게 생각해도 첫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첫번째 남편 후에노코지 야스히사 사건의 경우, 그가 죽기 전 전화를 통해 말한 것이 핵심 동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즉, 그가 오도리 지요코를 협박할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오도리 지요코 스스로가 경찰에 직접 말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이 비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녀는 모르는 그녀의 비밀은 결국 딸 미사에 관련된 것일 수 밖에 없죠. 경찰에게 도전하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아무도 모를 전화 통화 이야기를 직접 꺼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지고요.
그리고 그녀가 몰랐던 미사의 비밀은 혈액형에 대한 것, 그리고 가즈히코에 의해 색맹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폭로됩니다. 이 쯤 되면 과연 지요코가 불륜을 저질러 낳은 딸이고, 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진범인지? 에 대한 선택지만 남게 됩니다. 이 정도면, 그리고 명탐정 긴다이치라면 미사가 모습을 감추기 전에 그녀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텐데 너무 질질 끈 느낌이에요. 긴다이치는 2권 초반에 이미 색맹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미사에 대해 너무 일찍 밝혀버리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렸던 놀라운 진상의 충격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에요. <소름>의 경우 마지막 페이지에서 진상을 밝힘으로서 충격을 극대화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맛은 많이 부족하네요
진범이 밝혀지는 것은 모두 오도리 지요코의 두번째 남편인 아쿠쓰 겐조의 전처 후지무라 나쓰에의 목격 증언으로 밝혀진다는 점에서도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녀가 경찰에 가서 증언하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또 등장인물도 최근 읽은 작품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아서 몰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전남편만 해도 4명에다가 현재 교제하고 있는 건 재계의 거물인 아스카 다다히로, 지요코의 딸 후에노코지 미사와 할머니 후에노코지 아쓰코, 아스카 다다히로의 딸 히로코와 사위 데쓰오, 그가 총애하는 젊은이 무라카미 가즈히코와 고고학자 마토바 히데아키....
이렇게나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보통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를 헛갈리게 하기 위함이겠죠. 하지만 너무 많아서 혼란만 가중될 뿐더러 등장 인물 중 용의선상에 올릴만한 인물이 거의 보이지 않기에 그닥 성공한 전략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스카 다다히로를 노리거나 오도리 지요코를 노렸다면야 명확한 동기가 있는 인물이 드러났을텐데 오도리 지요코의 '전남편' 들이 범행 대상이라면 동기가 없다시피 하니까요. 그나마 작중 나오는 말 처럼 아스카 다다히로가 전남편들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정도만 동기 비스무레하지만 설득력은 엄청 떨어지죠. 아무래도 분량 늘리기가 주목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마지막으로 설득력없고 개연성없는 전개도 옥의 티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왜 다시로 신키치가 아스카 다다히로를 저격했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점이죠. 미사가 야스히사를 죽인 이유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셈이었을지도 묘사되지 않고요. 진상과 반전은 놀랍지만 이를 포장하는 전개와 묘사, 설득력 모두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 기대보다는 훨씬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기대치가 낮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거장이 말년에 힘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죠. 노력이 가상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추천할만 하지만 읽으시기 전 긴다이치의 명추리가 거의 없다는 것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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