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과 십자가 - 이언 랜킨 / 최필원 : 별점 1.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매듭과 십자가 - 4점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딘버러에 소녀들을 유괴하여 살해하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며, 이혼한 전 SAS 특수부대 출신 경사 존 리버스에게 기묘한 협박장이 연이어 날아든다.
존 리버스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우며 사건 수사에 나서지만 여러가지 단서들로 범인이 정말로 노리는 것이 그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타탄 느와르의 제왕'이라는 작가 이언 랜킨이 창조한 존 리버스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홍보 문구에 더해 적절한 분량과 괜찮은 책 디자인으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기있는 소재들 몇개를 나열한 펄프픽션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우선 주인공 존 리버스부터 살펴보죠.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못나가는 경찰, 전직 SAS 출신, 골초, 이혼남, 고독한 늑대, 트라우마..."
이 조합 몇가지를 섞어 만든 캐릭터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겁니다. 그냥 현대 하드보일드범죄물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스테레오 타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나마 조금 특이한 것이 SAS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것으로 관련된 트라우마로 괴로워한다는 묘사가 자주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이쪽 바닥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한다는 것 역시 뻔하디 뻔한 설정이죠. SAS에서의 훈련과 경험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도 불만스럽고요. 차라리 트라우마 없고 군대 경력을 활용하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마스터 키튼>> 쪽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또 그다지 잘생기거나 몸이 좋거나, 아니면 다른 매력이 있어보이지 않는데 여자들과의 원나잇이 쉽게 그려진다는 것도 불만입니다. 이게 영국적인 문화라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조직 내 동료들끼리 스스럼없이 원나잇을 즐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기는 어렵네요. 리버스의 전처가 리버스와 티격태격하는 상관 앤더슨의 새파랗게 어린 아들과 사귄다는 막장 설정은 도무지 왜 나왔는지 모르겠고요.
딱 한가지 마음에 드는 설정은 딸바보라는 점이랄까... 특히 딸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리의 건방진 수컷들을 하이에나 떼 보듯이 하는 장면만큼은 공감이 가더군요. 문제는 사건과 별 상관없다는 점이지만.

게다가 범죄 스릴러로서의 가치도 형편없습니다. 범인이 지속적으로 존 리버스에서 메시지를 보내지만 리버스는 살인마가 SAS 당시의 전우 고든 리브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이유는 트라우마로 과거의 기억을 봉인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막장 드라마기억 상실증에 버금가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편의적인 설정이 아니었다면 매듭을 통해 고든 리브를 쉽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당연히 체포도 손쉬웠을테고요. 최소한 사만다가 유괴되기 전에는 잡을 수 있었겠죠.
게다가 기억을 되찾는 것도 최면술사인 동생 덕분이라니 이 역시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나마 첫 만남에서 동생 마이클이 최면으로 전생도 끄집어낼 수 있다 운운하는 복선을 깔아놓기는 했지만...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독히 편의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또 작중 리브스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처의 애인이 죽고, 전처는 중상을 입고 딸까지 유괴당한 후에도 하는건 집에서 술이나 먹는 것에 불과할 정도에요. 과거에 사로잡혀 자책하는 것은 덤이고요. 범인을 알아낸 것은 앞서 말했듯 동생 마이클의 최면술 덕분이며, 범인의 흔적을 잡는 것도 경찰에서 피해 아동들이 같은 도서관 (중앙도서관)에 다녔다는 단서를 포착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나마 마지막 추격전에서 아주 약간의 활약을 하기는 하지만 대단하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거기에 더해 급작스러운 결말과 두페이지 분량도 채 되지 않는 에필로그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리브스의 트라우마는 극복되었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마이클은 어떻게 되었는지, 앤더슨은 어떻게 되었는지, 질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건지 등등등....

물론 몇가지 건짊만한 재미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피해 아동들 이름의 머릿글자를 연결하면 리버스의 딸 사만다의 이름이 표시된다던가, <<죄와 벌>>에 대한 과거 대화를 언급하며 책 속에서 총을 꺼낸다던가 하는 요소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기자 짐 스티븐스가 마이클 리버스의 마약 거래를 뒤쫓는 이야기가 병행해서 펼쳐지는 것도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고요.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무대가 되는 에딘버러에 대한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특히 유괴 사건에 대한 지루하고 기나긴 탐문과 자료 조사에 대한 끔찍함 역시 묘사는 놀라운 수준이에요. 모든 내용이 250페이지 안쪽의 짤막한 분량이라는 것도 4~500페이지 짜리 장편이 넘쳐나는 시대에 보기 힘든 미덕일 테고요.
아울러 출판사 오픈하우스가 새롭게 런칭한 장르문학 전문 브랜드 Vertigo 이름으로 출간되었는데 성격을 확실히 보여주는 장정과 디자인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장점에 비해 단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 관심이 가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후속권을 읽을 생각이 없고요.
이런 싸구려 펄프픽션을 뭔가 있어보이게 "느와르"라는 표현을 써가며 홍보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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