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몽환화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림픽 대표로까지 손꼽혔던 수영 선수였지만 심리적 이유로 수영을 그만둔 아키야마 리노는 사촌 나오토의 자살 사고 후 가까워진 할아버지 아키야마 슈지를 자주 찾는다. 그러면서 마침 꽃을 좋아하는 아키야마 슈지의 꽃 사진들을 블로그로 만드는 것을 돕게된다. 그러던 어느 날, 리노는 아키야마 슈지의 살해된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허나 홀로 사는 노인들을 노린 강도 사건으로 본 경찰의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진다.

이후 리노와 그녀를 우연히 알게되어 돕기 시작한 가모 소타 커플, 개인적 인연으로 아키야마 슈지에게 보은을 하려는 경찰 하야세, 소타의 형으로 수면 밑에서 은밀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요스케 등 여러 명이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리고 그들은 사건에 정체불명의 '노란색 나팔꽃'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스탠드 얼론 작품.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언급되기에 2010년대 이후 발표된 비교적 근간이라 생각하였는데, 책 뒤 해설을 보니 10여년 전 부터 연재해왔던 작품을 수정, 가필하여 단행본화 한 것이라고 하네요.

여튼 우선 장점부터 설명하자면 재미있고 속도감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뭔가 있어보이는 도입부로 시작하여 여러 사건들이 계속 이어지고, 그에 맞추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흥미를 자아내거든요. 결국 하나로 모여 끝난다는 깔끔한 마무리도 좋고요. 스토리텔러로는 확실히 뛰어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해 주네요.
아울러 주인공 커플이 몇 안되는 단서를 가지고 진상을 파헤쳐 나가는 모험에 약간의 추리가 더해진, <<부부 탐정>>같은 작품이라 온전한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 와중에 등장하는 약간의 추리 역시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현장에 남겨진 단서 - 젖은 방석, 페트병 차가 담긴 찻잔 - 를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하야세 경부의 추리가 대표적이죠. 왜 시원한 페트병 차를 마시는데 유리컵이 아니라 찻잔을 사용했을까? 찬장에 근사한 유리컵이 있었는데? 라는 극히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되는데 아주 설득력 높아요. 아들 유타와의 인연으로 오갔던 연하장 속 내용이 주요 단서가 되었다는 것은 작위적이지만 그 시점에서 독자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나쁘지는 않고요. (뭔가의 성취를 기원해 차를 끊는다는게 일본에서 일반적인 것인지 살짝 궁금하긴 합니다.)
또 아키야마 슈지가 개화시킨 노란 나팔꽃이 살인의 동기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예상과 다른 결말도 독특합니다. 보통 이런 류의 설정이라면 노란 나팔꽃의 존재에 거액의 돈, 악의 단체가 얽혀있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손주 친구에게 살해당했다는, 굉장히 평범한 결말이라 나름 신선했습니다.

그 외에도, 소타와 리노의 성장기적인 부분 역시 작품과 잘 어울립니다. 리노의 심리적인 약점 극복이야 너무 뻔하지만 소타가 원자력 전공으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진로를 고민하지만 몽환화 사건을 겪은 뒤 가모, 이바 가문의 나팔꽃 추적처럼 '빚도 유산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원자력 연구에 매진할 것을 결심하는 장면은 작품의 주제를 잘 드러낸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재미와 흥미에 비한다면 진상이 시시합니다. 앞서 '신선하다'고 소개하긴 했는데... 좋다고만은 볼 수 없어요. 제목 그대로 '몽환화'라 불리우는 나팔꽃 씨앗에 환각 효과가 있어 에도 막부메이지 시대에 걸쳐 철저히 통제했지만 한편으로는 은밀하게 마취제 등의 용도로 실험을 했다는 가공의 역사까지는 뭐 그럴싸해요. 이후 MM사건으로 이어지는 것 까지도 나쁘지는 않고요. 허나 범인은 단지 우연히 얻은 씨앗의 환각 효과를 지속시키기 위해 번식 의뢰를 한 마사야라는 것은 김이 빠집니다. 역사적인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는 그냥 곁가지일 뿐이니까요.

현대로 넘어와서도 가모와 이바 가문이 대를 이어 여전히, 비밀리에 나팔꽃을 쫓는다는 설정이라던가, 가모 소타는 나팔꽃 환각 살인자 사건 피해자의 후손이고 그가 우연히 만난 첫 사랑은 나팔꽃에 얽힌 비밀스러운 사명을 지닌 이바 가의 딸이었다... 등의 설정은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이 정도면 핫토리 가문이 지금도 닌자를 하고 있다는 수준의 이야기죠. 게다가 이 작품 속 수수께끼의 대부분은 이 두 가문의 비밀스러운 행각 때문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요스케가 소타에게 진상을 끝까지 숨긴 이유, 이바 다카미가 구도를 쫓는 시점에 가명을 쓴 이유, 마찬가지로 다카미가 소타를 만나고 도망치듯 떠난 이유, 요스케가 아키야마 리노에게 정체를 숨긴 이유, 요스케가 하야세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이유 등 모두가 그러해요. 현실적이지도 않고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말이죠. 한마디로 리노 - 소타 커플은 뭔가 위험하고 수상쩍은 일에 발을 들여 놓은 듯 하고 나름 활약도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럴 필요 없는 헛수고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슈지 살인사건의 범인은 하야세가 밝혀내고, 노란 나팔꽃에 대해서는 요스케와 다카미가 다 파악하고 있었으니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국 미스터리를 만든 것은 리노가 하야세 경부를 초반에 믿지 못한 탓도 큰데, 이 역시 아닌 듯 싶습니다. 누가 생각해도 수상쩍은 인물의 동생 가모 소타보다야 경찰 하야세 쪽이 더 믿을만한 인물 아닐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단점이 명확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팬이시라면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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