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시블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리커시블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학교는 계속해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맨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 하루카.
나는 란카에게 계속 빚만 지고 있다. 원래라면 경계해야 할 사태다. 남에게 뭔가를 빚지는 것은 안 좋은 일이다. 갚을 가능성이 없을 때는 특히 그렇다. - 하루카
이무기는 확실히 마을에 도움이 됐어. 하지만 역할이 끝나면 결국은 괴물이란 말이지. 더는 필요가 없어. - 무언가를 해 준 뒤 죽어나간 사람들을 빗대어 미우라 선생이 하는 말. 타지 사람들도 괴물과 다를 게 없다...

아버지의 횡령 사건 이후 도망치듯 의붓 어머니 고향 사카마키 시로 이사온 하루카. 가족은 의붓 어머니와 짐같은 의붓 동생 사토루 뿐.
아버지 범죄로 이전 학교에서 따돌림 당한 경험으로 하루카는 새 학교 적응에 사력을 다하고, 다행히 같은 반 린카와 친해진다.

하지만 사토루의 기묘한 예언이 시작되고, 그것이 마을에 전해지는 다마나 아가씨 전승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하루카 앞에 기묘한 일들이 이어진다. 마침내 그것을 알려준 학교 선생 미우라마저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지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의 2013년도 발표 장편.
요네자와 호노부는 왠지 장편보다는 단편에 능한 작가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장편도 좋은 작품이 있지만 제가 읽은 작품은 단편의 수가 더욱 압도적인 탓이 큰데 이 작품은 시종일관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넘쳐 제 선입견을 좋은 의미로 깨 주었습니다.

우선 호기심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초반부 하루카 시점에서 묘사되는 몰락해가는 시골 마을 사카마키시, 아버지가 횡령 후 홀로 도망가고 새어머니, 의붓동생과 이사오게 되었다는 고시노 하루카의 집안 사정이 드러나는 과정까지는 특별하게 없습니다. 하지만 의붓동생 사토루가 기묘한 행동을 보이는 부분부터 긴장감이 쌓여나가는데 속된말로 장난이 아니에요.

특히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다마나 아가씨' 설화와 현대의 고속도로 유치를 둘러싼 암투를 결합시킨 부분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 동안 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이야 이런저런 작품들을 통해 -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가 대표적이죠 - 많이 접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처럼 설화가 현대의 이슈를 엮여 전개되는 작품은 처음일 뿐더러, 그 수준 또한 높아서 아주 만족스럽네요. 다른 설화 모티브 작품들은 설화 속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던가, 설화 속 등장인물을 코즈프레한 범인이 등장하는 일종의 "재현" 수준에 그치는 것이 많은 반면 이 작품은 그렇지 않거든요. 마을을 위해 누군가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자살하는 다마나 아가씨 - 마을을 위해 소원을 들어주고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실력자라는 전승이 현대에도 '그대로' '다마나 아가씨'에 의해 재현된다는 것이 핵심이니까요.

또 설화와 엮어 사토루에게 특수한 능력이 있는 듯 묘사하다가 이 모든게 사토루의 유아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거대한 작전이었다는 것으로 넘어가는 구조도 깔끔합니다. 이 과정에서 린코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녀가 진짜 다마나 아가씨였다는 반전을 드러내기 위한 각종 장치 역시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요네자와 호노부스러워 만족스러웠고요.
이 과정에서 하루카 혼자 마을 전체와 대결하는 대결 구도는 폐쇄적 시골 마을 주민 대 이방인이라는 전통적인 대결 구도 (<<이끼>>(?))인데 자주 사용될 만큼 효과적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행동이 가면 갈 수록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전개 역시 일품이고요.

타지 중학생으로 살아남기 위한 하루카의 눈물겨운 노력도 볼거리입니다. 어떻게하면 따돌림당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해요.
이를 위해 의붓 동생을 귀찮고 창피해하고,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일한 친구 란코에게 의지하는 평범한 소녀가 점차 성장해 가는 과정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부분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도둑질까지 시도하는 것이 의붓어머지의 통보로 명복상의 가족이 해체된 후라는 점입니다. 허울은 깨졌지만 보다 굳건한 심지가 남은 것으로 둘의 관계가 정말 가족이 된 것은 물론 이후 하루카가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보다 당당하게 나아갈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마을에서는 탑이라 할 수 있는 다마나 - 린코와 대등한 위치에까지 올랐으니 뭐 더 말할 것도 없죠.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의붓 어머니에게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 하루카 캐릭터는 여태까지의 요네자와 호노부 캐릭터 중에서도 불쌍하기로는 최고 위치를 다투지만 이러한 점에서는 뛰어난 리뷰로 존경해마지 않는 정윤성 님 리뷰대로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 중 가장 희망적인 작품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울러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묘사도 탁월합니다. 특히나 미우라 선생님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5년 전 교수의 죽음에 얽인 진실을 하루카가 떠올린 순간의 묘사가 압권이에요. 다리 위에서 란코가 사토루에게 기묘한 웃음과 함께 귓속말을 하는 것을 보는 장면인데... 영상이 머리 속에 떠오를 만큼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영상화 한다면 이 장면만큼은 정말 대박일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작중에서도 계속 지적되는 부분인데, 고속도로 유치에 아무리 마을의 사활을 걸었다 하더라도 단지 유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보고서 때문에 사람이 죽고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작전을 벌인다는 것은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라고 해도 이 정도 노력이면 다른 방법 (다른 전문가를 통한 보고서 작성 등) 을 시도하는게 훨씬 빠르고 품도 덜 들었을 테니까요.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그냥 일종의 종교처럼 숭배한다... 는 것은 여러모로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오레!>>와 같은 만화를 보아도 돈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봤자 애물단지로 전락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지자체에서 증명해왔는데 이런 맹목적 광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또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답게 분명 '공정'한 작품이지만 너무 공정하든 것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가짜 다마나가 먹는 음식은 누가 봐도 무녀답지 못하고, 란코가 온모밀에서 파를 빼고 먹는 묘사 역시 지나칠 정도로 자세합니다. 이외의 부분들도 중요한 단서다 싶으면 너무 자세한 것은 마찬가지에요. 사토루가 무언가를 숨기는 장소에 대한 묘사처럼 말이죠.
그리고 의붓 어머니가 아무리 살기가 팍팍해도 그렇지 자기 친아들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마을 ("강"이라는 조직)에 선뜻 넘긴다는 것도 부모 입장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장기로 그리고 싶은 작가의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1학년이라는 하루카의 나이는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추리력과 행동력 모두 중학교 1학년이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요새 아이들의 지적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독립적으로 행동을 보일 정도라면 고등학생 정도는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저런 단점들 탓에 읽는 재미는 뛰어나고 지역 전승 설화와 현재의 문제를 엮는 솜씨는 탁월하나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하루카 캐릭터만큼은 마음에 들었던 만큼 단편으로라도 다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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