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 이후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해가 저문 이후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이후 6년만이라고 하네요. 모두 13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 작품 수 부터가 남다르군요.

작품들은 확실히 최신 작품스럽습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고 있거든요. 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작품은 거의 없어요. 심리나 특정 상황에 대한 묘사에 기대는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특정 몇몇 작품은 아예 공포라는 감정보다는 그냥 인간에 대한 묘사, 환상에 대한 묘사로만 이루어져 있을 정도에요.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기묘한 '강박'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해요. '강박'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 수록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이전부터도 느낀 것이지만 "음악"을 전면에 드러내어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작품이 많다는 것도 눈에 띈 점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N.>에서 환자 N이 괴물을 보고 달아나면서 차에서 라디오를 켰을 때 록 음악이 터져나오는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더 후"의 노래가 끝나고 흘러나온 것은 "도어스"의 <<세상의 이면으로 건너오라>>였다는데 참으로 절묘해요. 오싹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직접적인 공포가 드러난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변화가 좋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네요. 작가의 연륜이 쌓이고, 내면의 성찰이 깊어졌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이런 류의 작품을 스티븐 킹이 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대표적인 예는 사후세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윌라>>라던가, 홀로 헬스 자전거 운동을 하다가 강박적인 상황에 빠져든다는 <<헬스 자전거>>, 9.11 테러 때 회사를 땡땡이 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스콧에게 죽은 동료들을 상징하는 물건이 갑자기 찾아온다는 <<그들이 남긴 것들>> 등 입니다. 사후세계초자연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단지 소재일 뿐 내용과 전개는 인간 관계나 강박적인 심리 묘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관계가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고, 딱히 반전도 존재하지 않고, 기묘한 현상에 대한 설명도 없고, 심지어 무섭지도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지루했습니다. 스티븐 킹만의 문체와 묘사로 환상 세계를 그린 묘사는 나쁘지 않지만 새롭다기보다는 변주에 불과해 보이기도 하고요.
이는 남편이 꾼 꿈을 통해 공포가 실체화 된다는 <<하비의 꿈>>과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는 <<뉴욕 타임스 특별 구독 이벤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이 투하된 순간을 그린 초단편 <<졸업식 오후>> 역시나 지극히 익숙한 소재임에는 분명하고요.

다행히 과연 스티븐 킹이구나! 싶은 작품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아래 소개해드릴 4편이 바로 그것입니다. 짤막하게 소개해 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길.



<<진저브래드 걸>>
아이가 죽은 후 강박적인 달리기를 시작한 에이미, 그러나 그녀는 우연히 이웃에 사는 연쇄 살인마 피커링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후 그에게 쫓기게 되는데...

피커링에게 사로잡힌 에이미가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는 과정의 서스펜스가 어마무시한 작품. 묘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아이가 죽은 후 슬픔을 잊기 위해 에이미가 달리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이후 탈출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최후의 순간에 피커링이 수영을 못 한다는 설정을 갑자기 드러낸 것은 약간 반칙 같고, 어떻게보면 조금 뻔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강박증과 추격전이라는 두 개의 테마 만큼은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N.>>
저명한 정신과 의사 조니 본세인트가 자살하고, 그가 남긴 원고는 여동생에 의해 오랜 친구 찰리 킨에게 보내진다.
원고는 1년 전, 조니에게 N.이라는 강박증 환자가 찾아온 날부터 시작된다. N.은 충동에 의해 찾아간 한 장소에서 태고의 무시무시한 존재의 봉인이 풀리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사명을 갖게 되나 이로 인해 엄청난 강박증을 갖게 된 환자였다...


대부분 1인칭으로 쓰여진 의사의 원고와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작품. 고대로부터 유래된 절대자, 봉인, 심연, 심지어 "크쑨"이라는 이름까지는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케합니다.

그러나 환자 N.이 이야기하는 그의 과거, 즉 그가 애커먼 들판에서 '크쑨'이 처음 나오려는 것을 발견한 후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실로 대단할 뿐더러, 이 과정을 모든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배열하려고 하는 강박증과 잘 연결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또 유일한 증거는 N.의 증언밖에 없지만 그것을 단계별로 정신과 의사가 기록했다는 식으로 설득력을 보장함은 물론, 일종의 주간 드라마 같은 방식 (환자가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므로) 독자의 흥미를 지속시키는 전개 방식도 아주 빼어났어요.
이에 설득당한 조니 본세인트, 그리고 그의 여동생 셰리아가 자살하고 이 사명을 찰리 킨이 받게 된다는 <<링>> 스타일의 저주의 연쇄 역시 볼만했습니다.

그러나 N.이 이야기한대로 이 사명을 가진 자가 그냥 죽어버리면 '크쑨'의 봉인이 풀릴리 없다는 법칙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던가, 여러명이 "크쑨"을 바라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묘사가 없는 등 디테일이 조금 아쉽습니다. 혼자서 그렇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누군가와 같이 가면 되잖아요?
그리고 <<링>> 수준 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 연결고리, 법칙을 부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좀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면 N.이 조니 본세인트를 찾아온 이유와 조니의 동생으로 이어지는 관계에 이름의 이니셜이 이어진다던가 하는 것 처럼 뭔가 법칙을 넣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도 재미와 공포에 있어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진전을 이어받은,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님을 보여주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벙어리>>
영업사원 모네트는 성당에서 고해 성사를 시작한다. 고해 성사의 내용은 그가 영업 출장 중 한 벙어리 히치하이커를 태우고, 그에게 아내에게 얽힌 복잡한 가정사를 털어 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내 바브는 직장에서 거액을 횡령하고 '카우보이 밥'이라고 부르는 애인과 흥청망청 쓴 후 도망가 버린 것이었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 벙어리 스탠리 두세트

고해성사를 하면서 아내 바브와 그에 얽힌 범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모네트의 입담이 볼거리로 그게 누구건 선의를 베풀면 보답을 받는다는 전래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보답이 불륜과 범죄를 저지른 아내와 정부를 때려 죽이는 것이라니! 역시 스티븐 킹답습니다. 실제 뉴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창작 비화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결말이 좀 뻔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주 비좁은 것>>
이웃 그룬왈드와 땅, 그리고 애견의 죽음에 얽힌 송사에 휘말려 있는 주식 거래인 커티스는 어느날 그룬왈드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모든 요구를 수용할테니 이 모든 것을 끝내자는 제안. 커티스는 홀로 그룬왈드를 만나러 폐허처럼 버려진 공사 현장으로 찾아갔다가 권총으로 협박당한 후 공사 현장 화장실에 갖히게 되는데...

묘사력으로는 수록작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작품. 그야말로 거장의 글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었습니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별도 없는 한밤에>>의 첫번째 작품 <<1922>>가 떠오를 정도로 읽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네요. <<1922>>가 생지옥, 그리고 쥐에 대한 묘사로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화장실"과 "오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생생합니다. 정말이지 읽는게 힘들 정도였어요.

또 화장실에서 커티스가 죽게되더라도 일종의 사고사로 보이게 된다는 정황 묘사도 그럴싸 할 뿐더러, 그룬왈드가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가 도망가고 심지어 암까지 걸린 것을 커티스 탓으로 돌린다는 범행 동기 역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나 범행 방법은 완전 범죄를 그린 범죄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생각되네요.
아울러 이를 탈출하기 위한 커티스의 노력도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커티스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애견 벳시의 인식표 덕분이라는 소소한 디테일도 마음에 든 부분입니다.

딱 한가지, 커티스가 탈출 이후 보여준 행동과 그룬왈드의 자살은 좀 석연치가 않더군요. 특히 그룬왈드가 어차피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커티스를 다시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왜 포기했는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어요. 저 같으면 자살하기 전에 커티스에게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했을겁니다!

여튼 별점은 3.5점. 두번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악취미이긴 한데 재미만큼은 명불허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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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omjs 2016/12/18 22:51 #

    <스켈레톤 크루>의 단편 <서바이버 타입>의 결말부분
    -마치 <스탠드>에서 초반에 바이러스가 퍼지던 모습을 한명분으로 압축시킨듯한-이
    지금까지도 인상적으로 제게 남아있는데, 이번엔 그런 류의 작품은 없나 보군요..
    중후반부까지 독자들을 '읽음당하게(?)' 만드는 킹옹의 필력만큼이나
    매번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소위 '초자연적 마무리' 때문에 손을 놓은것도 있었는데,
    (특히 <그것>을 안 읽었었던 저에겐 <언더 더 돔>의 그 마무리는 저에게 용납이 안되더라는...)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이 글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킹옹은 장편보다 중단편이 그런 엔딩이 적은것 같아서.
    다른 중단편집인 <별도없는 한밤에>는 나온줄도 전혀 몰랐었는데 리뷰하신거 보니 이것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hansang 2016/12/23 20:00 #

    <<별도 없는 한 밤에>>가 조금 더 낫습니다. 공포라는 측면에서는 말이죠.
  • 2016/12/19 08:1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2/23 20: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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