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천 개의 유혹 - 에이자 레이든 / 이가영 : 별점 4점 Book Review - 역사

보석 천 개의 유혹 - 8점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다른

보석과 관련된 역사 속 일화를 소개하는 미시사 서적. 미시사를 워낙 좋아하긴 하지만 요새는 이쪽 책만 읽는 느낌입니다.

이 책은 크게 보석을 소재로 하여 가치가 가상적이며 주관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첫번째 장, 보석이라는 실체가 만들어 낸 감정의 좋거나 나쁜 결과를 다룬 두번째 장, 보석을 갖기 위한 노력이 모종의 성과를 거둔다는 세번째 장으로 나뉩니다.
이 중에서는 첫번째 장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세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첫번째 이야기는 레나페 인디언이 네덜란드인에게 맨해튼을 유리 구슬 몇개에 판 거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거래는 아직도 세계적인 비웃음거리인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물건의 가치는 가상적, 상대적, 주관적이며 당시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당연한 생각을 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지경입니다. 인디언에 대한 저도 모를 편견과 차별이 제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겠죠?
여튼 상세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인디언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동그란 유리 구슬은 인디언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금이라고 해도 무방한 가치가 있었던 보석이며, 맨해튼은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슾지대로 그나마 굴을 채취하는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던 불모지였기에 이 거래는 충분히 타당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레나페 인디언은 섬의 소유권자도 아니고 그냥 섬을 드나들며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니 거래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요. 마지막에 네덜란드인들도 '육두구'를 위해 이 섬을 영국에 넘기니 결국 가치는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다이아몬드가 실상 그렇게까지 대단한 보석은 아니지만 독점기업인 드 비어스의 천재적인 책략으로 현재의 보석의 왕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특히나 '결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처럼 인식시키는 일련의 마케팅 작업이 대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하네요. 드비어스가 만들어낸 것은 '욕망'이고 이것이 실제로 가치를 만들어 냈다는 것. 독점 기업이 채굴량을 조절하여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이야 석유 산유국도 쓰는 전략이지만 이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 위기를 마케팅으로 타개한다니, 정말로 시대를 앞서간 회사로 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추후 보석을 사더라도 다이아몬든 왠만하면 사지 않는게 좋다는 팁도 전해 줍니다. 살 여유는 없지만요...

세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보석은 에메랄드입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하고는 정반대더군요. 에메랄드는 정말로 희귀한 성분들이 그야말로 '대격변'이라고 부를 만한 지구의 큰 움직임을 통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보석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보석'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어요.
에메랄드에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들이 쭉 소개되는데 핵심은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 콜롬버스로 대표되는 신세계 탐험과 여기서 발견된 에메랄드 광산 이야기입니다. 결국 에스파냐 왕조는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지만 이를 '성전'이라는 곳에 낭비해 전성기가 짧게 끝났다는 것이죠. 이 와중에 에스파냐가 국채를 발행하는 등 현대 자본주의의 기초를 다지지만 너무 막대한 양의 에메랄드가 수입되어 가치가 폭락하는, 이른바 네덜란드 튤립 폭락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무너져 버렸다는 등 여러모로 참고할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두번째 장은 보석이라는 실체가 만들어 낸 감정의 좋거나 나쁜 결과를 다루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갖고 싶다는 욕망'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이 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인 유명한 마리 앙트와네트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제외하면 다른 두 편은 보석과 그에 대한 욕망이 역사적인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두번째 이야기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진주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진주를 좋아했고 특히나 언니 메리에게 에스파니아 왕 펠리페가 선물한 진주에 반했다 하더라도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와 결전이 벌어진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니까요.
세번째 이야기인 로마노프 왕가와 파베르제 달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능한 차르와 곪아가던 러시아 상황이 맞물려 폭동이 반란이 되는 일련의 과정은 파베르제 달걀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민중은 앙트와네트의 목걸이와는 다르게 이 달걀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요. 이후 해머라는 국제적인 장물아비가 러시아, 스탈린을 위해 러시아의 구 황실 소유 보석을 판매하며 드 비어스와 같은 천재적인 마케팅 책략을 구사한 것이 파베르제 부활절 달걀의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라는 후일담 만큼은 재미있긴 했습니다. <<명탐정 코난>> 초기 극장판의 소재 중 하나로 쓰일 정도로 유명해진건 다 해머 덕분인 것이죠. 그러나 보석 판매로 얻은 수익이 스탈린, 소련으로 흘러들어가 냉전 시대의 한 축을 만들게 되었다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으로 보였습니다.
마리 앙트와네트 이야기도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에서 수없이 다루어 왔던 이야기라 새로운 맛은 없었고요. 물론 마리 앙트와네트가 꽤 괜찮은 왕비였다는 해석은 신선했지만요.

세번째 장은 보석을 갖기 위한 노력이 긍정적 결과를 낳은 사례를 소개하는데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첫번째는 일본의 진주왕 미키모토 코이치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는 손목 시계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를 소개해 줍니다. 이 중 첫번째 이야기가 보다 흥미로왔어요. 진주왕 미키모토의 이런저런 일화들이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양식'임을 감추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여 오히려 자신의 진주들 가치를 높인 전략이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손목 시계 이야기는 재미있기는 했지만 손목 시계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가 전쟁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장황하게 풀어낸게 아닌가 싶었어요. 어차피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별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습니다.

여튼, 이러한 큰 주제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솜씨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뭔가 큰 흐름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계속 덧붙이는데, 이게 이야기와 결국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큰 재미를 전해주거든요. 예를 들자면 마리 앙트와네트 이야기에 소개된 호프 다이아몬드 이야기였습니다. 오래전 이런 저런 책을 통해 저주의 다이아몬드 이야기는 많이 접해보았는데 이는 다이아몬드를 마지막에 소유했던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포장하여 소문낸 것이라고 하네요. 윈스턴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호프 다이아몬드를 기부한 것도 역시나 선의만은 아니었습니다. 소문 탓에 호프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하여 미국 국세청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경이로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 진상이더라고요. 역시나...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이렇듯 재미도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책입니다. 저자가 보석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와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경력이 허투른 것은 아니라 생각될 정도이며, 첫번째 장은 별점 5점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후 이야기들은 그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격에 비해 도판이 충실하지 못한 점 정도였달까요? 이런 류의 미시사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덧글

  • 홍차도둑 2017/01/22 14:19 #

    드 비어스가 한 것이 '결혼식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나타나게' 하기 위해 스타들의 결혼식에 반지 지원해서 고귀함과 영롱함 어쩌고 저쪼고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라서 결혼용 예물로 딱이니 하는 식의 마케팅...

    그 표어는 지금도 쓰일 정도니까요 ^^
  • hansang 2017/01/22 14:42 #

    말씀하신대로입니다! 특히나 이 책에서는 그 마케팅에 관련된 디테일 (담당자 이력까지!) 이 아주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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