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 -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 강명순 : 별점 2점 Book Review - 기타

밧줄 - 4점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지음, 강명순 옮김/바다출판사

스물네 채의 농가와 밀밭, 그리고 목장으로 구성된 숲으로 둘러쌓인 산속 마을. 농부 베른하르트는 숲 속에서 빠져나와 놓여 있는 밧줄을 발견한다. 밧줄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한 마을 사람 3명이 숲으로 향하지만 멧돼지의 공격으로 실패하고, 이에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1명을 제외한 성인 남자 모두가 숲으로 향한다. 하루 뒤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독일산 어른들을 위한 우화. 일단의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위해 전진하다가 하나씩 죽어나가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아이디어와 변주 덕분에 꽤 흥미롭더군요. 특히 밧줄이라는 소재가 좋았으며, 마지막 순간에 또 다른 밧줄이 교차되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독자에게 하려는 것인지는 조금 모호합니다.무의미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벌이는 허무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인지, 헛된 노력을 경주하다가 파멸해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인지, 특정 상황에 닥친 사람들의 극한을 묘사한 군상극인지 잘 모를 정도로 전개가 멋대로인 탓이죠. 그래도 148페이지의 묘사로 보면 "무의미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벌이는 허무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는 합니다.
'불확실한 것에 운명을 걸고 길을 떠난 것은 철없는 짓이었다. 멍청하고 위험한 게임에 목숨을 건 셈이었다. 타당한 근거도 없이 결과가 좋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서 규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게임에 뛰어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이 게임에서 자신들이 졌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오만함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 책임은 오롯이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은 그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했다.' 라는 글인데 말 그대로 이미 끝난 게임이고 남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전진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자존심때문이고요. 그러나 '자존심' 이야 말로 정말로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죠. "패배를 인정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사나이다"라는 오래전 만화 <<캄 브레이커>>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이미 패배한 것을 알았다면 허무한 노력, 자존심을 버리고 패배를 인정하라는 것일 수도 있는데 패배한 것을 알아도 끝까지 가야하는게 사나이의 길일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고작 그 이야기를 하는 것 치고는 곁가지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요. 예를 들자면 베른하르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특별한 교훈이나 울림을 주지 않습니다. 또 다쳤던 울리가 회복한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영 알 수 없어서 답답하고요. 마을에 유일하다시피한 멀쩡한 사내로서 베른하르트의 아내 아그네스나 미하엘의 아내 안나 등 모두를 유혹하면서 남자판 여왕벌 사건이라도 일으키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이야기가 더 발생하지 않거든요. 이래서야 분량 낭비일 뿐이죠.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망친 후 떠나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딱히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밧줄이 무엇인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한 한계점입니다. 우화라는 명분으로 가능했던 열린 결말이기는 한데 핵심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어떻게보면 무책임 보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도 어렵고요.
또 밧줄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노력도 헛되다고 폄하할 수 없습니다. 밧줄 끝에 진짜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소재와 전개는 흥미로운데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습니다.
아울러 12,000원이라는 가격도 감점 요소입니다. 문고본 형태로 여백없이 잘 압축해서 만든다면 충분히 150여 페이지로 끊을 수 있을법한 중편 소설 치고는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장정이나 책 디자인이 굉장히 인상적인 것도 아니니까요. 오래전 범우 사루비아 문고 시절의 미덕이 그리워집니다.

덧붙이자면, 힘든 여정이지만 늑대만 다시 만나지 않는다면 남은 사람들의 복귀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더군요. 정확하게 몇명인지는 모르지만 스물네 채의 농가가 있다고 하니 최소 24명, 전날 다친 울리히를 빼면 23명입니다. 일종의 버팀목으로 남게 된 요한네스야 외지인 라우크와 1:1로 치환되니 23명이라고 해도 되겠죠. 여기서 첫 날 이후 복귀를 시도한 베른하르트와 알프레드를 빼면 21명, 미하엘이 독사에 물려 죽고, 늑대 습격 시 1명이 물려 죽고, 라우문트가 라우크를 살해하고 먼저 도주하니 17명이 남게 됩니다.
사냥에도 능숙한 진짜배기 사나이들인데다가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밧줄만 따라가면 되니 복귀에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 않을까요? 장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식량은 분명 숲에서 조달 가능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잘못된 리더 (라우크)와 불순분자 (라우문트)가 동시에 제거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모르는 길이 아니라 한번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고, 특별히 다치거나 아프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뭐 이건 작품 주제하고 무관한 이야기이고 이렇게 되면 우화로서의 성격이 더욱 애매해지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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