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김봉규 : 별점 2.5점 Book Review - Food or 구루메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6점
김봉규 지음/담앤북스

우리나라 유명 종가와 그 종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독특한 음식, 을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제목대로 크게 두 항목, 먹치레와 술치레로 구분됩니다. 두 항목 구성은 약간 다른데 소개되는 내용은 항목별로 동일하고요.

먹치레의 경우 1장 '선비, 셰프가 되다'를 예로 들자면, 안동 계암종가와 삼색어아탕을 소개하면서 <<수운잡방>>이 안동 광산 김씨 가문의 탁청정 김유와 그 손자 계암 김령이 저술한 것이며, 이 책이 안동 계암종가에 물려 내려오면서 관련된 음식들이 전해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운잡방>>에 나오는 30여가지 음식과 술을 재현하였는데 삼색어아탕은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은어, 숭어를 이용해 완자를 만든 후 은어 삶은 물에 집간장으로 간은 해 탕을 만들어 완자, 녹두묵, 대하에 탕을 부어 완성한다는 간략한 레시피로 끝납니다. 그리고 '김유'라는 인물에 대해 2페이지를 할애한 설명을 추가하고 있고요. 먹치레 편의 모든 항목 구성이 이와 같습니다.

종가와 종부들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를 알게 되니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당연하지만 서애 류성룡이 '중개' (일종의 약과)를 좋아했다던가, 고산 윤선도는 의술에 밝아서 직접 장수를 위한 술을 담구어 먹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죠. 일제 강점기 바둑고수 노근영의 삶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안 인물이지만 독특한 인물도 많네요. 천재로 유명했다는 노사 기정진의 청나라 사신 수수께끼 풀이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류이주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인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고요. 그의 자택인 '운조루'에는 항상 쌀 두가마니가 들어가는 뒤주가 있어서 배고픈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퍼 갈 수 있었다고 하고 심지어 굴뚝까지 낮다고 합니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험이었다니 대단해요.
종가 고택에 대한 설명들도 재미난게 많습니다. 전주 인재종가의 판소리 공연을 위해 지었다는 칠량집 학인당, 앞서 말씀드린 노근영의 자택이었던 노참판댁 고가는 한번 찾아가 보고 싶어집니다. 노참판댁 고가는 특별한 건 없지만 노근영이 바둑 내기에 건 탓에 주인이 27번이나 바뀌었다는 이력이 호기심을 당기거든요.

잘 모르는 종가라도 음식 분야에서 흥미로운 것들도 많습니다. 지촌종가의 여름철 고급 별미라는 '건진국수'는 정말 맛있을 것 같아 꼭 한번 먹고 싶어지더군요. 국수를 삶아 바로 건져 사용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예상외로 뽑아낸 국수가 아니라 칼국수라는게 의외였습니다.
성주 사우당종가의 '은어 국수'는 은어를 잡아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한 뒤 푹 고아 육수를 만드는 것인데 지금은 물이 오염되어 은어를 거의 잡을 수 없어 요리가 끊길 위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라면 요리왕>>에 나오는 세리자와의 라면이 말린 은어로 육수를 내는 것이었죠. 이렇게 말린 은어를 이용하여 육수를 내어 재현하면 될 듯한데 맛이 많이 달라지려나요?

이어지는 술치레 역시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술치레는 종가를 별도로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술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항목 구성이 전부 같다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구성은 어떤 집안에서 어떻게 전승되어 왔으며 지금은 누가 비법을 이어 빚고 있다는 유래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빚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으며 그 다음에 술의 특징과 잘 어울리는 안주, 그 집안 유명인에 대한 짤막한 소갯글이 덧붙여져 있는데, 제가 술을 좋아해서인지 더 재미있던것 같기도 하네요. 이렇게나 모르는, 안 먹어본 술이 많았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모두 18종의 독특한 전통주가 소개되는데 이름만이라도 들어본 것은 '교동법주'와 '안동소주' 뿐이니 말 다했죠. 그나마 교동법주와 안동소주도 제가 먹어본 것과는 뭔가 다른, 더 깊이있고 전통있는 술이 소개되고 있고요.

몇가지 흥미로운 것들만 소개해 드리자면, 교동법주는 오랫동안 만석꾼이었던 경주 최부잣집 가양주더군요. 술 이름에 '춘'자가 붙는 춘주는 귀한 술에 붙는 별칭으로 당나라 때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화주가 점성이 높아 숟가락으로 떠 먹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이화주의 梨花가 배꽃이 재료라는 뜻이 아니라 '배꽃이 필 무렵 빚는 술'이라는 것도 흥미로왔습니다.
육당 최남선이 꼽은 조선 3대 명주는 '관서감홍로', 전라도 '이강고', '죽력고'라는데 세가지 다 먹어보고 싶네요. 감홍로는 그 중에서도 이런저런 곳에서 언급되며 특히나 <<별주부전>>에서는 자라가 토끼에게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꾀며 <<춘향전>>에서는 춘향이 이도령과 이별하는 장면에서의 이별주가 감홍로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안동소주가 작금에 이르러 '명인 안동소주'에서 세계적 위스키가 되고자 2015년부터 오크통 숙성을 한다니 이 역시 꼭 한병 소장하고 싶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일본 술에는 스피리츠가 없다고 한탄하던 평론가가 오키나와 고주를 마시고 감탄한다는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내용은 많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음식과 술에 대해서 소개에 그친다는 점이에요. 이런저런 정보들이 많기는 하지만 깊이는 많이 부족합니다. 종갓집 한곳당 음식 하나만 소개하는 구성도 아쉽고요. 어떤 종갓집은 대표 음식이 많은 곳도 있을텐데 말이죠. 이런 점에서 본다면 책보다는 영상 다큐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지금 사업체로 발전한 종가와 종가 음식의 소개는 어떻게 하면 쉽게 먹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려는 취지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의련 백산종가의 '설뫼 망개떡'은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산 안희제를 위함이라는 명분까지 있고요. 그러나 솔직히 광고로 보이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오희숙 전통 부각'이 대표적이죠. 그 외 전통주를 복원한 것들 모두 광고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나 싶을 정도고요. 내용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거라면 협찬 형식으로 좀 더 저렴하게 내놓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나쁘지는 않으며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입문서로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싼 편이고 편집에서도 페이지 낭비가 심해서 가성비가 좋지만은 않아요.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덧붙이자면, 종갓집별로 분리하여 책 한권씩을 따로 내는게 좋은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살림 지식총서' 정도 두께로 말이죠. "한국 종가의 먹치레와 술치레' 시리즈! 멋지지 않습니까? 가격만 괜찮다면 저는 구입 용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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