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말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3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하늘을 나는 말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기타무라 가오루의 전설적인 일상계 연작 단편집. "동서 미스터리 100"의 일본편 17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걸작이죠. 오래 전 부터 국내 출간을 기다리던 작품입니다. 사실 국내 소개가 이렇게나 늦어진 것 자체가 굉장히 의외에요. 앞서 말씀드린 "동서 미스터리 100"선 상위 20개 작품 중 국내 미출간 작품은 이 작품과 아유카와 데쓰야의 <<검은 트렁크>> 두 작품이 유이할 정도거든요. <<검은 트렁크>>는 1950년대 출간된 묵직한 고전이라 그렇다쳐도, 이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나름 신세대 미스터리 작품일 뿐더러 일상계 미스터리는 국내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등으로 제법 인기를 확보하고 있기까지 한데 말이죠. 온갖 수준 이하의 작품들까지 번역되는 일상계 추리물의 홍수 속에 이 유명 작품이 이제서야 소개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어른의 사정이 있는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여튼, 그만큼 기대가 컸는데 다행히 재미있었습니다.
작가가 여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섬세한 묘사들이 가득하여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며, 추리적으로도 상당히 정통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묘한 이야기가 선보이고, 그것을 엔시씨가 주어진 단서만으로 풀어낸다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인데, 대체로 설득력있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화자 "나"와 라쿠고가 탐정 엔시 씨 캐릭터도 좋습니다. 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음은 물론, 주인공의 "국문학도" 로서의 전문가적인 지식과 엔시 씨의 "예인"으로서의 특수 능력 - 놀라운 기억력과 라쿠고 연기를 통해 단련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능력 - 이 이야기와 잘 결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점이라면 분량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것 정도? 이것은 엔시씨와 나, 그리고 그 외 등장 인물들과 본 편 추리와는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덕분에 캐릭터가 생동감있게 다가오고, 전개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더해진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추리 부분의 비중이 작아진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더군요. 국내 소개되었던 작가의 다른 단편집 - <<시미가의 붕괴>> - 등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었기에 의외이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이 작품이 발표된 해가 버블의 정점이었던 1989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여유있고 풍요로왔던 시대에 어울리는 느긋한 분위기가 가득 느껴지거든요.

그래도 숨 넘어갈 것 처럼 달리는 와중에도, 쉬어갈 필요는 있는 법이죠. 단점은 사소할 뿐,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를 전해주는 좋은 일상계 소품입니다. 별점은 3점. 일상계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리베의 망령>>
"나"는 우연히 대학교 은사 가모 교수의 부탁으로 라쿠고가 엔시씨 인터뷰에 동행하게 된다. 인터뷰 후 회식 자리에서 가모 교수는 어린 시절 꾸었던 기묘한 꿈 이야기를 하는데 엔시 씨는 이야기만 듣고도 진상을 알아낸다. 그는 증거 보완을 위해 한달의 시간을 요청하는데...

화자인 "나"와 탐정역인 라쿠고가 엔시씨가 등장하는 기념할만한 시리즈 첫 편. 섬세하면서도 느긋하고, 조금은 할머니 취향인 "나"라는 캐릭터와, 뛰어난 기억력을 갖추고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엔시씨 캐릭터가 제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통 일본적 소재인 라쿠고와 오리베 자기, 그리고 교수님 꿈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전개도 괜찮고요.

추리적으로도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꿈의 이유가 된 숙부님이 평소 책을 함부로 대했다는 것이 핵심이거든요.
물론 교수님이 어렸을 때의 일본 사회 분위기, 당시 경매 제도 디테일 등은 국내 독자로서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래도 일본 한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도입부로는 적절한 이야기였습니다.

<<설탕 합전>>
"나"는 어느 날 엔시 씨를 우연히 만나 홍차를 함께 마시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앞 테이블에 앉은 3인조의 기묘한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정말로 사소한 것에서 진상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의 능력이 잘 드러난 작품. 핵심 추리는 "왜 세 명의 마녀(?)가 설탕 합전을 벌이는가?" 이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 신경쓰는 사람들이 세 명의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아낸다던가, 그녀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을 예언하는 등의 소소한 추리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설탕을 홍차에 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설탕을 꺼내려는 목적이었다"에서 시작되는 핵심 추리의 흐름 및 진상도 충분히 합리적이고요.
아울러 변장과 연기(?)로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엔시 씨의 활약까지 더해진,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나"가 무언가 이상한 것 (소금)을 넣는 것을, 원래 퍼낸 설탕을 다시 넣는 것으로 착각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다른 용기에 담아온 것을 넣는 것일 텐데 이걸 착각한다는 것은 무리죠. 앙심을 품은 알바생이 너무 자신을 드러내놓고 가게에 출입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시대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주 좋은 일상계 소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두 껍데기 안의 새>>
"나"는 친구 다카오카 쇼코와 함께 도호쿠 여행을 떠난다. 엔시 씨의 공연도 보고, 온갖 절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기던 중, 현지에서 만난 친구 에미의 차 시트가 모두 벗겨진 채로 발견되는데...

분량은 약 90페이지에 가까운데, 80여 페이지에 걸쳐 도호쿠 여행담이 소개되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일상계 작품이라지만 이래서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아요. "나"와 친구들 사이의 대화 역시 지나친 감이 없지 않고요.
또한 이 작품 속 추리는 조금은 억지스럽습니다. 동일 차종의 차 커버를 벗겨 위장한다는 것이 대표적이죠. 단지 시트 커버만 벗긴다고 차가 비슷해질까요? 그 안의 모든 디테일, 쿠션이라던가 소품이라던가 등이 다를텐데... 아울러 이렇게 위장하려고 했던 대상이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을 쉽게 떠올리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배경 묘사가 아주 근사하긴 합니다. 일본 인형 코케시의 고장이라고도 하는 "자오산"의 풍광이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지기는 하거든요. "나"가 문학에 대해 정말로 조예가 깊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고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있기에 감점합니다.

<<빨간 모자>>
"나"는 치료 차 방문한 동네 치과에서 우연히 함께 대기실에 있던 "점 여사"로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알고 있는 점 여사의 동창 모리나가 유미코 씨에 관련된 이야기로, 매주 일요일 밤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집 앞에 나타난다는 것...

전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전편의 결과 (아이를 버린 어머니)를 궁금해 한 엔시 씨가 "나"를 공연에 초대한 후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 그리고 본편 이야기가 이혼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무난합니다. "빨간 모자" 이야기는 사실 모리나가 유미코의 창작으로, 점 여사가 찾아온 날, 화장실 옆에서 신발장을 정리한 것이 핵심 단서라는 것은 괜찮았어요. 충분히 일상계스러우면서도,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니까요. 그날 목격한 "빨간 모자"는 유미코의 딸일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점 여사의 남편과 모리나가 유미코가 불륜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인간 관계, 인간 심리를 그려낸 묘사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점 여사의 방자한 태도라던가, 마지막에서 "나"가 사고가 날 뻔한 상황 등에 대한 묘사는 솔직히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본 편 추리하고는 동떨어져 있는 모리나가 유미코의 <<빨간 모자>> 동화 묘사도 좀 길고요. 이러한 점은 한 편당 80여 페이지라는 분량을 맞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냥저냥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
"나"는 집 근처 상점 "모퉁이 집"의 젊은 사장 구니오 씨가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다. 이후 "나"는 부탁을 받아 유치원 크리스마스 공연 비디오 촬영을 나서고, 그 곳에서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구니오 씨를 다시 만난다. 그날 그는 유치원에 가게에 있던 목마를 선물로 기증한다.
그런데 이웃집 며느리로부터, 유치원 마당에 놓여져 있던 목마가 순간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표제작. 일상계 단편집 마무리에 어울리는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 수수께끼 자체는 평이합니다. 그래도 다무라씨 (구니오씨의 연인)가 날짜를 착각한 것이 잘 설명되고 있는 만큼, 즐길거리는 충분합니다. 일상계에 딱 어울리는 정도의 수수께끼였다 생각되네요.

무엇보다도 제가 읽었던 크리스마스용 소품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나"의 생일이 크리스마스이고, 소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며, 이야기의 핵심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것이니 이만큼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더해 별점은 3.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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