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시모쓰키 아오이 / 김은모 : 별점 4.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10점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오랜 경력의 평론가가 "왜 크리스티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지?"를 알기 위해 작품 발표 순서대로 전부 읽어본 후 평을 기록한 평론 집이자 리뷰 집.

리뷰의 수준은 최상급입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작품의 핵심을 콕 집어 지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추리 소설 리뷰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정도예요.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은 '불순물 하나 없는 본격 추리 소설의 원형'이라고 한다던가, <<엔드하우스의 비극>> 은 고명에 의존하지 않고 면발과 국물의 감칠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같은 작품이라는 식이죠. 무엇보다도 좋은 작품은 정말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전문가답게 유사하거나 참고해야 할 여러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트릭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비뚤어진 집>>, <<구름 속의 죽음>>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지만... <<골프장 살인 사건>> 이 10년 뒤 발표된 역사적 명작과 같은 장치를 사용했고, <<블랙커피>> 속 장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2>> 속 장치와 일맥상통한다, <<맥긴티 부인의 죽음>> 은 하드보일드 성향이라 우수하다는 등 정보는 그 깊이와 수준에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뷰가 작품이 발표된 연대별로 이어지는 덕분에 여사님의 발전, 작법의 진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사님 특유의 섬세한 인간관계 묘사가 정교하게 쌓아 올려지고, 트릭보다 인간관계와 동기 등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사님이 얼마나 많은 작품 스타일에 도전했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통 추리에서 시작해서 모험물, 신본격 스타일 서술 트릭, 스릴러, 법정극, 하드보일드, 오컬트 심령 괴기물, 심지어 코즈믹 호러(!) 까지 장르 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니까요. 왜 거장인지를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매우 낡아빠진 오래전 고전 작가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세번째 여인>> 의 경우 1966년 발표된 작품으로 곧 '레드 제펠린' 이 결성될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는 시대가 확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읽은 여사님 작품에서 '스푸트니크' 호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죠. 참고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최첨단 추리 소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무모한 도전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증거라나요?

이렇게 리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게 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걸작'이기 때문인데, 걸작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여사님의 걸작들은 요약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 탓이고요. 작품 전체가 트릭이자, 복선이자, 단서이자, 미스디렉션으로 소설 전체가 속이기 위해 짜여진 플랫폼일 뿐 아니라, 여사님은 트릭에 능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는 본격물에 비하면 그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는 게 최종 결론인데, 여사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리뷰를 통해 여사님의 특징적인 작법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은 그녀가 일종의 "연극"처럼 상황을 다룬 것이 비결로, 여사님 작품은 그림이나 동영상, 연극처럼 독자나 관객이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이야기라는데 아주 타당해 보였어요. "다의적" 이야기를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 내는지가 중심이라는 것으로 정말 무릎을 칠 만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여사님 작품을 몇 편 떠올려 봐도 저자의 말대로 "여사님 머릿속에 상영되는 연극을 종이 위에 옮겼다고 해도 무방하다." 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겉보기를 만든 후, 겉보기와는 다른 진실에 그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방법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여행지라는 무대와 신원을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정말 그럴싸 하죠? 연극과 같은 상황을 접목하기 좋은건 당연히 일상과 분리된 장소일테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위장하는게 보다 손 쉬운건 당연하니까요.
아울러 여사님은 독자가 어떤 때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어떤 때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지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던 덕분에 독자를 속이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흉내도 내기 어렵겠죠.

그런데 딱 한 가지, 저자 스스로 모든 작품의 별점을 매기고 평가한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물론 평론, 리뷰 및 평가는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별점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걸작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이 많이 부여되고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별로였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다섯 마리 아기 돼지>> 나 <<끝없는 밤>> 을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은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로 알고 있는 매리 웨스트매콧 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의아했던 점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정교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다의성' 이라는 항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슬픈 사이프러스>> 등 몇몇 작품은 국내 번역명과 동떨어진 일본식 제목으로 소개되거나, 포와로와 마플 및 기타 장편 외 몇몇 작품들에 대한 국내 출간 여부가 체크되지 않은 점은 옥의 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이자 잘 쓰인 추리소설 리뷰 집으로 완벽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저도 여사님같은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리뷰라도 쓸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여튼,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뛰어가서 사 오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전체 베스트 10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도 여사님의 작품은 십 수권 읽어본 정도로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서둘러,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습니다.

1. 커튼
2.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끝없는 밤
4. 주머니 속의 호밀
5. 봄에 나는 없었다.
6. 백주의 악마
7. 깨어진 거울
8.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9. 죽음과의 약속
10. N 또는 M

그 외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할로 저택의 비극>>, <<맥긴티 부인의 죽음>>, <<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것만 해도 올해 여름까지는 충분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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