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의 미스터리 - 애거서 크리스티 / 송경아 : 별점 2.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카리브 해의 미스터리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송경아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 마플은 카리브 해의 한적한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라피엘 소령과 어울리게 된다. 라피엘 소령은 여러 과거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살인자의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하다가 무언가를 보고 갑자기 사진을 치워버린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소령은 시체로 발견되고, 지병인 고혈압 탓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미스 마플은 소령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되는데...

카리브 해의 한적한 호텔을 무대로 한 여사님미스 마플 시리즈 장편.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이하 <<공략>>) 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소개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영상물로는 굉장히 실망했었지만 연출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지금은 내용이 기억도 나지 않기도 해서요.

읽으면서 가장 놀라왔던 것은 이야기의 속도감입니다. 무려 3명이 살해당하고, 1명은 미수에 그치는 연쇄 살인극이 펼쳐지지만 중편 분량에 가깝거든요. 이전 <<다섯 마리 아기 돼지>> 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묘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덕이죠. 최근 읽었던 몇몇 대장편들에서 보았던 짜증나고 지루한 심리 묘사, 장황하기만 할 뿐 쓰잘데 없는 배경 묘사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미스 마플의 심리는 비교작 자주 묘사되는 편이지만 모두 전개에 필요한 요소들이라 납득할만한 수준이었고 말이죠. 이런 점은 현대 작가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네요. 물론 이런 묘사의 부족으로 '카리브 해' 라는 배경이 잘 드러나지 않기는 합니다만 - 원주민 종업원 이야기만 없다면 우리나라 온양 온천이라고 해도 딱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배경 묘사는 별 게 없습니다 - 장점에 비교하면 지극히 사소한 문제죠.

또 미스 마플이 드러내놓고 탐정 활동을 벌이는게 아니라는 점도 상당한 볼거리였습니다. 평범한 할머니가 손님들과 나누는 수다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추리를 진행하는 전개인데, 이게 정식 수사가 아닌 탓에 여러가지 제약이 생겨버리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이야기들의 진위 여부죠. 심지어 3인칭 시점으로 오간 대사마저도 정말로 그렇게 말했는지? 를 고민하게 만드는건 정말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라 생각합니다. 조금만 잘 가공하면 꽤 괜찮은 서술 트릭으로 써 먹어도 무방할 정도에요. 지극히 평범한 할머니의 수사와 추리는 현실감 넘치는 분위기를 선사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공략>> 에서 언급한대로 <<킥 애스>> 의 힛걸과 같은 현대적 여성 영웅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독특한 히어로물로의 가치도 높습니다. '결핍', 즉 뭔가 부족한 영웅이 활약하는 현실적인 모험담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는데 읽어보니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힛걸은 뛰어난 격투 실력을 갖추었지만 부모도 없는 어린아이이고, 미스 마플은 천재 탐정이지만 늙은 독신 할머니라 '결핍' 측면에서 보면 거의 동일하니까요. 아, 정말이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감탄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아요. 트릭은 별볼일 없지만 <<공략>> 에서 말한대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 드라마' 를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끌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안되는 등장 인물들이 각자 비밀이 있고, 나름의 동기가 있으며, 한 명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식이거든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이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정교한 구성도 볼만하고, 누가 범인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라피엘 소령은 살인범이 누군지 알아챈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걸 그 자리에서 밝히지 않았는지가 잘 설명되지 않는건 이상해요. 구태여 감출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이는 빅토리아가 고혈압 약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동일합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를 안다면 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동거남이 있는 이상 그녀를 살해한다고 입막음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간과된 부분입니다.
또 몰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살해한다고 하더라도... 빅토리아와 럭키는 그렇다쳐도 라피엘 소령 살인죄까지 묻기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비록 대사들을 통해 사진 속 독살범이 '여자일 수도 있다' 는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독자는 3인칭 시점으로 된 대사를 통해 이미 그 독살범이 남자라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이 발표된 1960년대 시점으로 보아도 단지 가계에 정신병자가 있었다는 정도로 연쇄 살인을 일으킨다는 발상의 설득력은 낮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무려 3명이나 살해당한 상황에서 몰리를 마지막으로 독살하려고 시도하는 행동도 설득력있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공략>> 에서 별점 5점을 주면서 걸작이라고 극찬한 탓에, 기대가 너무 컸습니다만...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공략>> 에서 말한대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지다는' 미스 마플의 도움 요청 장면도 독특하기는 한데 그렇게 멋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야말로 리뷰가 원작을 초월한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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