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브리짓 허스 / 조윤경 : 별점 4.5점 Book Review - 기타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8점
브리짓 허스 지음, 조윤경 옮김/동아엠앤비

법의학의 역사를 쉽게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과학사 서적. 일종의 통사와 같이 '법의학'의 흐름을 일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작부터 별다른 과학적인 수사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로 비소가 특별한 검사법이 없어서 널리 쓰이던 1751년, 영국 여성이 아버지 독살 혐의로 기소되면서 과학 수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사건이 소개됩니다. 비소는 가열하면 마늘 향을 내뿜는데, 용의자 메리의 약갑 속 물질을 가열하니 마늘 냄새가 난 것이죠.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그야말로 과학 수사의 한 걸음을 내딛은 방법이에요. 이 증거로 메리는 교수형을 당하게 되고요. 그리고 1806년 로제 교수가 '로제 검사법' 이라는 비소 검출법을 고안합니다.

그리고 의사가 검시관이 되는 과정,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까사뉴가 1881년 리옹에 '법의학 연구소'에 합류하여 부검에 참여하고 여러 제자를 양성하여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특히 유명한 '크리펜 사건' 은 대중에게 라까사뉴와 같은 법의 병리학자의 존재 및 그 유용함을 널리 알리게 되죠. 병리학자 스필스베리가 크리펜 자택 지하실에서 발견한 사체가 크리펜의 실종된 아내라고 판단한 것이 사형 선고의 결정적 요인이 되거든요. 참고로, 최근 조사 결과로는 이 사체는 '남자의 사체' 였다고 합니다. 스필스베리의 추리대로 독살이 실패한다고 해도 총으로 쏘고 사체를 절단하여 유기하는 건 일반적인 독살범 행태와는 다르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인거죠. 하지만 코라 크리펜은 결국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크리펜의 범행은 성공했지만 우연에 의해 정의의 철퇴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여튼 이러한 최근 조사로 스필스베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또 다른 유명 연쇄 살인 사건인 '욕조 속의 신부들' 사건 당시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조사하여 증언한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이라는 유사 사건이 있어서인지 더 기억에 남네요. 의사인 주제에 100년전 사기꾼보다도 유치하게 현장을 조작하다니,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을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1925년 노먼 쏜 재판에서의 논란으로 스필스베리의 완벽함에 균열이 가고, 대중도 병리학자의 결점과 오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유럽보다 늦은 1918년 법의관 제도가 시작되는데 법의관들의 활약으로 여러 건의 사건이 해결됩니다. 부검이 아니라 정말 탐정 뺨치는 추리로 범인을 밝혀낸 사건도 있습니다. 하숙집에서 노부인이 시체로 발견되어 자연사라 생각되었지만, 현장에 도착한 법의관은 '가정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문은 안에서 잠겨있었다는 뜻인데, 그럼 열쇠는 어디 있는걸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뒤 이은 수사로 열쇠를 소지한 범인을 잡는다는 결말인데, 당장 추리 소설에 응용해도 좋은 멋진 추리에요.

이러한 법의관 제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과학적인 수사 방법도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반 상식이 된 범죄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한 수사는 1세대 법과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홈즈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에드몽 로카르를 비롯, 오스트리아의 한스 그로스, 프랑스의 빅토르 발타자르, 미국의 벤자민 모건 밴스 등 여러 선구자들의 활약으로 해결된 사건이 연대별로 흥미롭게 소개됩니다. 이러한 과거의 사례는 물론이고, 과거에는 분석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정보로 현대에는 어떻게 사건이 해결되었는지를 병렬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뒤이어 각종 분석 방법들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챕터별 구성은 대동소이합니다. 해당 분석법의 역사와 주요 인물, 그리고 해당 분석법이 활용된 주요 사건이 소개되는 식이죠.
'지문'의 경우 뎁퍼드가 살인 사건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내용은 이전에 읽었던 <<지문>> 에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딱히 언급할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도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 로 잘 알려진 에일린 워노스 사건 소개가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문' 을 숨겨야 했던 사건도 재미있습니다. 시체를 자신이 죽은걸로 위장하려고 기도한 사건인데 황당한건 시신의 신원만 위장했지 정작 범인 자신의 신원은 위장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후 다른 사건 사례를 통해 지문의 결함이 있다는 점도 알려주며 마무리됩니다.
이와 함께 베르틸롱 (베르티용) 측정법도 함께 실려 있는데, <<지문>> 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베르틸롱 측정법의 심각한 문제인 "쌍둥이는 구분할 수 없다" 는 실제 사례는 흥미로왔습니다.

총기 분석에서는 유명한 '사코와 반체티 사건' 에서 최근 분석 결과 사코는 진범이었을 수 있다는 결론. 그리고 알 카포네의 '발렌타인 데이의 학살' 관련 수사가 재미있었고요.

혈흔 분석 챕터에서는 <<도망자>> 의 모델 샘 셰퍼드 의사 부인 살인 사건이 가장 흥미로왔습니다. 혈흔 분석을 통해 재판 결과가 뒤바뀌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의 조사 결과와 결론을 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 그리고 결론이 아주 새로왔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피해자학 (희생자가 살해될 요소가 무엇인지? 를 분석하여 동기, 용의자를 알아내는 기법)' 을 토대로 메릴린이 희생자가 될 확률은 오로지 불안정한 결혼 생활 뿐이었다고 단언합니다. 그 외 현장이 조작된 증거도 상세하게 실려 있고요.

시신 분석 사건에서는 '아이스맨' 이라는 별명이 붙은 살인 청부업자가 피해자의 시신을 수년간 냉동한 후 유기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실제 범행은 수년 전이지만 3~4 주 전에 살해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든거죠.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를 토대로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체포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내용은 흡사 미드 <>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그러나 이어지는 유골 분석은 다른 챕터에 비하면 사례의 재미가 조금 덜한 편입니다. '아나스타샤 사건' 으로 법의인류학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정도가 괜찮은 정도였어요.

마지막은 프로파일링과 DNA 분석이라는 최신 수사 기법으로 마무리됩니다. 프로파일링은 익히 수많은 책을 통해 접했던 내용의 요약이지만, FBI 행동 과학부의 수사관들이 활약한 사건들은 흥미진진합니다. 사건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의 활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DNA 분석은 이를 통해 해결한 사건보다도 증거가 왜곡된 사건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DNA가 악수 등으로 쉽게 옮겨질 수 있기 때문으로 이를 통해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물론, '바이트 마크' 와 같이 오류가 있는 증거가 채택되어 발생한 문제 등이 함께 소개되는데 참 무섭더군요. 요새도 증거 조작이나 오인식, 각종 오류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가끔 보도되는데, 항상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법의학, 법과학에 대한 통사적인 이해는 물론, 실제 사건과 연계하여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재미도 전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으며 도판들도 본문 이해를 돕는데 적절한 수준으로 삽입되어 있는 등 전체적인 책의 완성도도 빼어납니다. 한마디로 재미와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보기드문 좋은 책이에요.
분량 상 개략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많으며, 이미 각 분야별로 상세하게 설명한 다른 책들을 통해 제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제법 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5점.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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