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화학 - 캐스린 하쿠프 / 이은영 : 별점 3점 Book Review - 기타

죽이는 화학 - 6점
캐스린 하쿠프 지음, 이은영 옮김/생각의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 속에 등장했던 14 종의 독약 - 비소, 벨라도나, 청산가리, 디기탈리스, 에세린, 독미나리, 바꽃, 니코틴, 아편, 인, 리신, 스트리크닌, 탈륨, 베로날 - 에 대해 각각 약 3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해당 독약의 역사와 효과, 실제 사례 및 검사 방법과 같은 정보를 여사님 작품 중 해당 독약이 등장한 대표작의 줄거리와 함께 설명해주는 병리학, 약학 서적이자 추리 소설 설명서.

여사님이 1차 세계 대전 중 지역 병원에서 조제사로 일하기 위해 자격 시험까지 치뤘던 나름 독약 전문가라는 설명에서 시작하는데, 등장하는 독약의 작용 사례에 대한 묘사는 약학 학술지에서 칭찬 받았을 정도로 정확했다고 하네요. 이러한 정확하고 치밀한 묘사 덕분에 이런 책까지 나올 수 있었겠죠.
소개되는 독약의 역사, 효과, 사례 모두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례 부분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유명 사건이 다수 등장하는 탓도 큰데 대표적인 예는 나폴레옹 비소 독살설입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비소 염색 벽지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해주거든요. 여기서 비소 벽지의 독소는 실제로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좋지 못한 건강 상태에 기여했고, 의사들이 이를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중독성 화합물을 주입한 것이 죽음의 원인일 것이라고 추리하는데 이 역시 꽤나 그럴싸 했습니다.
라스푸틴이 시안화물 중독으로 사망했는지? 에 대한 가설 검증 부분도 흥미로왔던 부분입니다. 특히 라스푸틴이 알코올성 위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위산이 적어서 시안화칼륨이 치명적인 시안화수소로 변환되는 양이 적었으리라는 이야기는 무척 신기했어요.
유명인에 얽힌 사례 외에도 수록된 사례는 많습니다. 디기탈리스 설명에서 1863년 처음으로 피해자에게서 디기탈리스가 검출된 사건 사례부터 설명해 줄 정도로 충실하기도 하고요. 이 사례에서 피해자의 토사물이 묻었을 침실 바닥을 대패질 해 올 정도로 끈질겼던 경찰의 수사 의지가 기억에 남네요.
실제 여사님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등장합니다. <<엄지손가락의 아픔>>이 대표적으로 1935년 실제로 발생했던 워딩엄 간호사가 저지른 모르핀 독살 사건이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하는데, 설정을 보면 꽤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그 외에도 에세린이 함유된 콩이 자생되던 서아프리카 칼라바르 (그래서 칼라바르 콩이라 불리움)에서는 용의자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이 콩이 혼합된 음료를 마시게 한 다음 결정했다는 옛날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천천히 콩을 씹어 삼키려 했고, 죄가 없는 사람들은 죄가 없다는 확신 하에 재빨리 삼켰을텐데 천천히 먹을 수록 독약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신체가 독약을 흡수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일종의 심리적 근거가 있는 재판 방식이라는게 아주 인상적이었거든요.
해독제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데 그 중 비소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숯"을 삼킨다는 내용은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독약을 흡수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사무실 숯도 치우지 말고 그냥 두어야 할듯요.

또 이미 읽었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죽음과의 약속>>, <<비뚤어진 집>>,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막의 비극>>, <<삼나무 관 (슬픈 사이프러스)>>, <<부부 탐정>> 등등) 여사님 작품과 병행되어 설명되는 구성도 흥미를 자극합니다. 대표작과 독약을 결부시키기 위해 여사님 전 작품을 분석하여 해당 독약이 쓰인 작품이 무엇인지 선정한 것도 책을 참 정성들여 썼구나 싶어 마음에 들었고요. 제일 처음 소개되는 비소 항목 첫 문단에서 "실제로는 네 편의 소설과 두 편의 단편에서 오직 일곱 명의 등장인물만이 이 악명높은 독약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고 알려줄 정도니까요. 참고로 비소만큼이나 유명한 청산가리는 "10편의 장편과 4편의 단편에 등장하여 17명을 해치웠다" 고 합니다. 도로시 세이어스 여사님의 맹독은 비소였는데,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여사님 작품 속 최고 킬러는 청산가리라는 사실도 재미있네요.
무엇보다도 이렇게 독약과 내용을 결부시켜 설명하면서도 작품 속 주요 스포일러에 대해 잘 감추는 솜씨는 본받고 싶었어요. '탈륨' 에 대해 설명하는 <<창백한 말>> 에 대한 설명 외에는 흥미만 자극할 뿐 핵심 내용은 전혀 알려주지 않아서 정말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들거든요.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만 놓고 보면 4점도 아깝지 않지만 독약의 성분과 체내 작용 과정 설명을 위한 복잡한 화학적, 생리학적 반응에 대한 설명이 조금 지루하고 따분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여사님 팬을 비롯한 추리 소설 애호가, 추리 소설 작가 등 이 쪽 바닥 사람들께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글

  • 홍차도둑 2018/09/23 21:33 #

    실제로 몇몇 사건에서 '이거 사망자가 죽기 전에 보인 여러 증상들이 크리스티 여사님 소설에서 읽었던 것과 똑같던데요?' 라고 증언해서 독극물 살인범을 잡은 케이스도 있었다고 하니까요...ㄷㄷㄷㄷ
  • hansang 2018/09/23 21:27 #

    네, 이 책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반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극물을 소개하는 측면도 있어서 비난 받았다고 하니 여러모로 대단합니다. ㅎㅎ
  • 진냥 2018/09/24 00:43 #

    이 책 굉장히 재미있었지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크리스티 작품 중 안 읽은 작품을 죄다 달릴 마음 먹었는데, 최근에는 영 답보 상태입니다ㅠㅠ
  • hansang 2018/09/29 19:43 #

    저도 요새는 답보 상태라... 더 힘 내 봐야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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