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문 1/2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2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살인의 문 1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살인의 문 2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다지마 가즈유키는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낸다.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 뒤 들불처럼 번진 소문 탓에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가 꽃뱀에게 걸려 집안은 파산한다. 겨우 취직한 다지마는 어린 시절 친구 구라모치 때문에 이런저런 사기 행각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3년작. 제목은 주인공 다지마가 마지막에 구라모치를 죽이려다 망설인 순간, 구라모치가 습격당해 식물인간이 된 사건에서 형사가 한 말에서 따 왔습니다. 어떤 계기가 주어짐으로써 살인이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지마에게는 그 계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계기가 있어야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작품은 제목만큼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추리물이나 범죄물은 아닙니다.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듯한 주인공 다지마가 초등학교 동창이자 친구 구라모치와 악연으로 엮여 보낸 평생을 그리는 대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요. (평생이라고 해도 30대 정도입니다만....) 작가의 다른 작품인 <<백야행>>이나 <<비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장기간에 걸친 등장 인물들의 드라마를 그리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환상적인 요소도 없고, 범죄물이나 추리물도 아닌 드라마로서 접근하고 있다는게 차이점입니다.

물론 다지마를 정신적으로 옭아매는 구라모치의 사기 행위와 직접적인 살인을 비롯하여 수 차례의 살인 미수, 혼인 빙자 사기와 결혼 사기 등 온갖 범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범죄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특히 사기 행위의 디테일, 그 중에서도 2 번째 사기인 금 예탁 사기의 디테일은 상당한 수준이며, 다지마가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게 아내 미하루라는걸 밝혀내는 과정도 아주 그럴싸 합니다. 뻔한 트릭이고, 증거도 스토커 행위로 얻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높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이러한 범죄는 모두 다지마가 구라모치 때문에 평생 짊어지고 가게 된 불운의 한 종류일 뿐이며, 히가시노 게이고가 범죄 소설 전문가라서 이러한 범죄가 소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무리 봐도 보조적인 장치일 수 밖에 없겠지요. 야구 이야기였다면 에이스였지만 어깨가 망가져서 선수 생명이 끝나고, 연인은 타 팀 4번 타자와 결혼한다는 <<공포의 외인구단>> 서두와 다름이 없으니까요. 오혜성에게는 손 감독이라는 스승이자 멘토, 그리고 엄지라는 목숨을 건 집념의 대상이 있었지만 다지마에게는 불운만 가져다주는 악우 구라모치만 있었다는 정도만 다릅니다.

이렇게 범죄물, 추리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기대와 살짝 다르지만 흡입력 만큼은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파산에 이은 몰락과 전학 등으로 겪게 되는 이지메, 첫사랑 소녀는 구라모치와 사귄 뒤 자살하고 그 뒤 구라모치와 엮여 이런저런 사기 행각에 가담하다가 조금 삶이 나아지나 싶을 때 만난 여자 탓에 비참한 결혼 생활을 거쳐 이혼하는 등 행복이라는 걸 거의 느끼지 못하는 어마무시한 삶이 정말로 파란만장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의 수준만 놓고 보면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에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이렇게 불행한 등장 인물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란만장하기는 한데,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딱히 알맹이가 없다는 문제는 큽니다. 일단 지나치게 작위적이에요. 다지마의 선택이 항상 안 좋은 결과를 낳는게 너무 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실수를 했을까 싶을 정도라 설득력이 떨어지고 답답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실수는 모두 다지마 본인의 실수라서 딱히 구라모치 탓을 할 이유도 없어요. 첫 직장에서 다단계 판매 회사의 사기스러운 아르바이트에 대해 잠깐 만나던 가나에에게 말한 것도 다지마 본인의 실수이고, 미하루와 결혼을 결심한 것도 다지마 본인이니까요. 미하루와의 결혼은 구라모치의 음모가 있었다 하더라도 결혼하라고 등을 떠민건 아니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혼한 뒤 삶이 팍팍했다 하더라도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명백한 본인 잘못이고요. 또 첫사랑 요코의 자살도 구라모치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요. 정황 상 요코의 아이가 구라모치의 아이라는건 증명할 수 없거든요.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도 않잖아요?
게다가 보석을 파는 다단계 회사 사기, 동서 상사의 금 예탁 사기, 마지막의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 모두 본인이 돈 때문에 구라모치와 협력한건 사실입니다. 양심의 가책 어쩌구 해도 무려 3번이나 유사한 범죄에 발을 담근 주제에 정의로운 척을 하는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요. 아무리 바보라도 이 쯤 되면 구라모치를 멀리하는게 당연할텐데, 그런 부분에서의 설득력도 약합니다.

아울러 다지마가 불행에 빠지게 된 계기인 부모님의 이혼은 구라모치가 퍼트린 소문에서 시작되었다는 마지막의 반전도 문제에요. 구라모치가 금수저 다지마에게 열등감을 가진 나머지 그만큼 성공하지 못하면 내 수준으로 떨어트리겠다! 고 결심했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다지마의 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살의를 품었던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시도도 있었고요. 즉, 구라모치가 소문을 낸 건 잘못이라 하더라도 그 소문은 진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이 좋아 범행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소문을 내지 않았어도 동일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모든 원인을 구라모치에게 돌리는 건 무리입니다. 그리고 다지마의 집안이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가 꽃뱀에 걸려든 탓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꽃뱀을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지요. 아버지는 결혼 중에도 가정부 아주머니와 불륜을 저지른 호색한이니 별 차이가 없었을 것 같아요.
또 구라모치가 다지마에게 집착했던 이유로 구라모치의 성공 철학 - 성공하려면 내버릴 돌이 필요하니 버리기에 만만한 인재를 항상 곁에 두어야 하고, 그 인재는 믿을 수 있어야 하는 상대여야 한다 - 이 소개되는데 이 역시 합리적이지 못해요.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사기 사업에서 내버린 적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다지마는 월급 한 번 밀리지 않고 잘 빠져나간 편입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인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에서는 구라모치가 마음만 먹으면 다지마를 사기의 책임자, 총책으로 둔갑시키기 어렵지 않았던 점에서 볼 때 더더욱 그러합니다.
수차례 등장하는 다지마의 살해 계획도 반복되어 지루한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청산가리 등 기껏 구했던 독극물은 다 어쨌는지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캐릭터도 분량에 비하면 별로입니다. 특히나 다지마는 묘사된 양에 비하면 알맹이가 너무 없어요. 대표적인게 어린 시절 독에 탐닉했다는 묘사입니다. 덕분에 이지메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딱히 어울리는 결과를 빚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지마가 반했던 유키도 사기꾼에 대항하던 강단있는 아가씨에서 어느새 구라모치에게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여성으로 전락하고요.
언변좋은 사기꾼 구라모치만 그나마 볼 만 했습니다. 그런데 구라모치의 행각을 보면 다지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었건 간에 액면가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의 친구가 맞아요. 금전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이전 사기 행각에서의 소소한 도움은 둘째치고라도 마지막에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에서는 거액의 돈을 댓가없이 빌려주고, 회사에서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며 임원 대우로 데리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재미는 있지만 설득력없고,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점에서는 무협지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협지는 주인공이 성장이라도 하지, 다지마는 끝까지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을 보면 그보다 못해 보이기도 하지만요. 흡입력은 대단해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아주 빼어나나 작가의 최고작으로 보기에는 무리네요.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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