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1) : 에로 대 그로, 복숭아와 고래고기 통조림 창작 or 번역

제 블로그를 찾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작년에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책을 출간했었습니다.<<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제목이었지요.
여러가지 이유로 책에 수록되지 못했던 미발표 원고들이 몇 편 있는데, 시간나는대로 정리해서 차분히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후속권을 발매할 정도로 잘 팔리지도 못했지만, 후속권이 발매될 정도의 양이라도 다시 쌓이면 좋겠네요.


<<이단자의 사랑>>은 일본 유학 시절인 1934년, 단편 <<타원형의 거울>>으로 데뷰한 국내 최초의 본격 추리 소설 작가인 김내성의 단편입니다. 저는 절판된지 오래인 <<비밀의 문>>이라는 단편집을 통해 읽었었는데, 다행히 복간되어 이제는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으니까요.

의사 김철하는 애련과 약혼하지만 그녀를 시인 추강에게 양보합니다. 1년에 한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과 함께요. 추강이 그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이지요.
허나 애련은 병으로 죽고, 추강은 묘 위에 복숭아 나무를 심습니다. 애련의 살과 피로 자라난 복숭아 열매를 김철하가 보는 앞에서 독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1년에 한번 김철하가 찾아오는 날, 추강은 김철하 앞에서 복숭아를 따 먹습니다.

<<복숭아>>

추강의 애련 독점을 상징하는 이 장면 묘사는 그야말로 탁월합니다. 탐미적이면서도 에로틱하고, 변태스러우면서도 즙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거든요. 그러고보면 미녀의 무덤에서 뻗어나온 과일로 복숭아 말고 다른 과일은 생각하기 힘드네요. 원래 복숭아가 미녀를 상징하는 과일이니까요.

복숭아는 원래는 <<손오공>> 에 등장한 천도 복숭아처럼 장수의 상징이며, 제삿상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귀신을 쫓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신령스러운 과일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농밀한 여인의 이미지가 생긴걸까요? 하긴, 맛있는 복숭아를 뜻하는 '수밀도'가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맛이 달다는 뜻이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테지만요.
뜻 뿐만이 아니라,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저칼로리에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좋고, 비타민도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좋으며, 피부의 멜라닌 생선을 촉진하는 타이로시나아제라는 성분을 억제해줘 피부 미백 효과도 볼 수 있다니 미인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과일입니다.

특별한 조리 없이 추강은 여름날, 복숭아를 따서 껍질 째 먹을 뿐인데 이거야말로 복숭아를 제대로 먹는 방법이에요. 껍질에도 비타민 E 등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이 많고, 온도가 올라가면 단맛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강의 도발에도 김철하는 복숭아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본인이 가져온 고래고기 통조림만 먹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고기의 정체를 알아챈 추강에게 김철하가 "고래고기다!"를 외치며 작품은 끝납니다.

작품이 발표된 1943년은 조선이 아직 식민지였을 때로, 당시에는 "고래고기"가 가장 싸고 대중적인 고기였으리라 짐작됩니다. <<맛의 달인>> 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서도 전쟁 전,후 가장 저렴하고 흔했던 고기는 고래고기였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포획량이 많아서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었다고 하니까요. 지금은 포경 금지로 귀하고 비싼 음식이 되었지만요.

맛은 바다에서 살기 때문인지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 맛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회나 수육 등으로 주로 먹지요. 소고기와 비슷한 특성 덕분에 구워먹기도 하고요. 외국 사례를 보면 <<모비딕>>에서는 스테이크로 먹는 묘사가 등장하며, 아이슬란드에는 고래 고기 꼬치가 전통 요리 중 하나라는군요. 맛도 좋지만 콜레스테롤 없는 불포화 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온갖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있어서 몸에도 좋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냄새 탓에 호불호는 많이 갈립니다. 이 냄새는 포경 금지 탓이 큽니다. 고래는 정식으로 잡을 수 없어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 등에 한해 유통이 되고 있는데, 고래는 죽자마자 피를 빼지 않으면 부패가 바로 시작되거든요. 육지 동물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은데,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이라 곧바로 썩기 때문이지요. 고래고기의 역겹고 불쾌한 냄새는 바로 철 성분이 많은 고래의 피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입니다. 이 냄새를 없앨 수는 없고 바로 피를 뺀 신선한 고기를 먹는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통조림을 만든다면 죽은지 오래된, 싸구려 고기를 썼을 겁니다. 진한 양념으로 냄새를 최대한 잡고, 양념 맛으로 균일화시키는 조림 방식으로 만들면 맛은 대충 얼버무릴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금도 '야마토 조림' 고래고기 통조림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야마토 조림은 설탕과 생강, 간장, 맛술 등으로 조려내는 요리인데, 양념이 강해서 고기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니 고래고기에 딱 들어맞지요. 생강과 간장향으로 냄새도 잡을 수 있을테고요. 고기도 굉장히 부드러워진다고 합니다.

<<일본의 시판 고래고기 야마토 조림 통조림>>

물론 작품 속 고래 고기 통조림의 재료는 고래 고기는 아닙니다. 조리 방식도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여 건조했을 뿐이고요.
같은 재료,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포라면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에 수록된 단편 <<지옥>>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산적들에게 끌려온 주인공이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갇힌 뒤, 식인 산적 일가가 던져주는 육포로 연명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중 함께 갇혔던 신혼 부부 중 신부가 도망친 날, 신선한 고기가 던져졌다는 묘사가 압권입니다. 이 지옥에서 결국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고 일가를 구덩이에 가둔 뒤 벌어진 참상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야마시로 아사코라는 작가 이름은 낯설지만 <<Zoo>>, <<Goth>>의 작가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인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단자의 사랑>>은 지금 읽기에 아주 빼어난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당대를 휩쓴 키워드인 '에로그로' 코드가 지나쳐서 읽기 부담스럽고,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너무 짙으며, 내용도 흔해빠진 3각관계 치정극에 가까우니까요. 시인과 과학자의 대결 운운 하는 것도 영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도 반전만큼은 강렬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약 50여년전에 이 작품을 읽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시고 계실 정도입니다. 반전에 농염한 복숭아, 그리고 정반대 이미지인 고래고기가 큰 역할을 하는걸 보면, '에로그로'가 '에로'와 '그로'가 아니라 '에로' 대 '그로' 인 셈입니다. 요리, 음식이 적절하게 쓰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통조림을 쓰는게 좋을지 좀 궁금해집니다. 저는 골뱅이 통조림을 떠올렸는데 고기 형태가 너무 다르니 금방 들통났을것 같아요. 과연 뭐가 좋을까요?



핑백




2017 대표이글루_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