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계단의 비밀 -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 판도라books : 별점 2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나선계단의 비밀 (개정판) : 국내 최초 완역판 - 4점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지음/판도라books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신 여성 레이첼 이네스는 조카 2명과 함께 써니싸이드 저택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하여 현지에서 집사 토마스 존슨을 채용했는데, 그가 기묘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저택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아무도 없는 밤에 이상한 현상 (문 소리가 나고, 창문이 닫히는 등)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레이첼 이네스와 하녀 리디는 그 이상한 현상과 맞닥뜨렸다.
다행히 다음날에 조카 핼시와 커트루드, 핼시의 친구 베일리가 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날 새벽에 저택 주인의 아들 아놀드 암스트롱이 살해되고, 핼시와 존 베일리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레이첼 이네스는 기묘한 현상과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관 중 한 명인 제이미슨과 손을 잡는데...


100여년전 발표된 서스펜스 스릴러.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작품입니다. 다양한 추천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고 있지요.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서는 40위네요. 무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보다도 순위가 높습니다!
이런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개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30년 전, 아동용 팬더 추리 걸작선이 마지막이었어요. 절판된지도 오래되었고요. 그런데 찾아보니 e-book으로 번역, 소개되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저작권료가 필요없는 퍼블릭 도메인이 된 덕분이라 생각됩니다.

읽어보니 명성을 얻고, 걸작의 지위를 굳힌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이는 합리적인 설정을 고딕 호러와 잘 결합한 아이디어 덕이 큽니다.
밤마다 특정 장소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가 나고, 누군가 저택에 계속 침입하려고 한다는건 괴기스럽습니다. 그러나 '저택 안에 무언가 있고, 몰래 이를 손에 넣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에요! 나름 합리적이죠. 이를 피해자 아놀드의 부친인 트레이더즈 은행 회장 폴 암스트롱의 급작스러운 병사, 거금 횡령에 따른 트레이더즈 은행의 파산, 뭔가에 놀라 심장마비로 죽는 집사 토마스 사건 등과 엮은 전개도 합리적이에요. 이를 풀어내자면, 트레이더즈 은행에서 거금을 횡령한건 폴 암스트롱이었습니다. 그는 죽은걸로 위장하여 횡령한 돈을 가지고 도망칠 속셈이었지요. 그러나 아내가 써니싸이드를 임대한걸 모르고 써니싸이드에 돈을 숨겨 놓았던 겁니다. 그래서 집에 몰래 숨어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거고요. 집에 돈을 숨기려면, 원래 주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 그럴듯했어요. 집사 토마스는 죽었다고 한 옛 주인을 보고 놀라서 죽었고요. 앞서 토마스가 유령을 무서워하는 묘사가 나오는 등 복선을 쌓아 올린 덕에 설득력이 높습니다.
또 이런 류의 설정을 정통파 고딕 호러와 결합한 아이디어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런 류 아이디어의 원조로서 역사적 가치도 높고요. 사실 '몰래 숨어들려는 사람' 쪽에서 바라 본 이야기가 많은데 (<<경찰서를 털어라>>), '아무 것도 모르는 (집)주인' 쪽 시각에서 본 이야기라 독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이유도 명확히 알겠더군요. 그만큼 문제도 많아요. 가장 큰 문제는 아놀드 암스트롱 살인 사건입니다. 범인이 작 중에서 행적과 과거가 거의 언급되지 않은 가정부 왓슨 부인이기 때문이에요. 뜬금없기 그지없죠. 이건 아무리 봐도 반칙입니다. 사건 속 우연도 지나칩니다. 아놀드가 핼시와 잭 베일리가 저택을 떠난 직후 살해된 것, 왓슨 부인이 거트루드 방에서 핼시의 총을 손에 넣어 살해했다는 것 모두가 우연이었으니까요. 이럴 바에야 아놀드 살인 사건은 빼고, 폴 암스트롱이 저택을 침입하려는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굉장히 옛스러워서 지루하다는 단점 역시 큽니다. 중요한 순간을 이런저런 이유로 놓치고, 중요한 정보를 사람들이 감추는 식으로 전개되니까요. 짜증나는 등장 인물들도 지루함을 유발합니다. 조카 핼시와 거트루드가 대표적이지요. 핼시의 친구이자 거트루드의 연인 잭 베일리는 누가봐도 수상했어요. 거액 횡령에도 연루되어 있고,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새벽 3시에 달아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둘은 이유는 말하지도 않고, 그저 믿어달라고 징징대기만 합니다. 거트루드는 어느 때 보다 고모가 필요할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절규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레이첼 이네스가 말한게 맞습니다. "증명이 되어야 나는 믿을 거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이네스 가문은 그렇다." 이 작품 속 거의 유일한 '상식인' 이 주인공이라는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레이첼 이네스 역시 가문 운운하는 식으로 드러내는 봉건 귀족스러운 사고 방식의 소유자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별다를게 없어요. 시대를 반영하는 흑인 비하 대사도 거슬렸고요.
의미없는 캐릭터들도 많습니다. 왓슨 부인이 아놀드 암스트롱을 살해한 동기를 위해 등장시킨 루시앤, 폴 암스트롱의 협력자 워커 박사, 협박범 니나 캐링턴이 대표적입니다. 본 이야기와 관계없는 곁가지로 분량 늘이기에 불과해 지루함을 더해줄 뿐이었습니다. 작위적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모든 사건은 그냥 흘러갈 뿐입니다. 결국 범인인 폴 암스트롱이 사고로 사망하는 식으로 해결되고요. 추리 요소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서 더 지루했던 것 같네요.
레이첼 이네스 가족이 저택에서 휴가를 끝내기를 범인 폴 암스트롱이 기다리지 못한 이유도 잘 모르겠어요. 그가 정말로 죽은게 아니라는걸 밝혀내지 못하는 한, 시간은 폴 암스트롱의 편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있지만, 지루하고 짜증나는 요소도 많은 탓입니다.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들어내고 속도감있게, 그리고 더 고딕 호러 느낌으로 전개했다면 진짜 걸작이 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언급한 문제에는 번역 탓도 있습니다. 문장들이 매끄럽지 않고, 직역도 많으며, 교정도 제대로 보지 않은걸로 보이거든요. 주요 인물인 잭 베일리는 중반까지 '존' 베일리라고 등장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좋은 번역으로 제대로 읽으면 제 평가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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