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 요코야마 히데오 / 최고은 : 별점 2.5점 Book Review - 추리 or 호러

빛의 현관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품이 꺼진 뒤 몰락해버린 건축업계에서 친구 오카지마의 도움으로 겨우 설계일을 이어나가던 아오세는, 의뢰인 요시노로부터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평생의 걸작인 Y주택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요시노 가족이 Y주택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아오세는 그들의 행적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옛 유명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가 깊숙히 개입되어 있다는걸 알아채는데....


원제는 <<노스라이트>>. 2020년에 발표되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최신작입니다. 2020년 당시, 온갖 순위를 휩쓴 작품이지요.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국내편 2위, '2020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위, '2020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2위 등을 차지했었습니다.

건축가가 주인공인 추리 소설은 보기 드뭅니다.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들이 사건의 무대가 되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건축가가 주인공이라고 볼 수는 없고, <<낯선 승객>>은 주인공 거이가 건축가지만 내용은 건축과는 무관했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아오세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인 Y주택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심혈을 기울인 Y주택에 의뢰인 가족이 이사오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하며 직접 찾아 나선 설정과 동기는 지극히 건축가스러웠어요.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외국인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설명들은 나중에 아오세가 건축가로 더욱 성장하여 미술관 공모전이라는 큰 도전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아오세의 가족 복원에도 도움을 주고요. 이 정도면 건축가가 주인공이며, 건축물이 주요 소재인 추리물이라고 하기 충분하겠죠.

물론 주인공 아오세가 평범한 건축가인 탓에 대단한 추리력이나 수사력을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일반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와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꽤 괜찮았어요. 요시노 가족을 찾을 때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 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진품이 희귀한 덕분입니다. 그래서 요시노 도타라는 의뢰인의 뿌리를 알아내는 과정도 타당했고, 아오세가 브루노 타우트를 알아가는 과정은 독자도 함께하는 느낌이라 재미있었습니다.
Y주택을 짓게 된 의뢰는 요시노 가족이 아니라, 이혼한 전처 유카리의 바램에서 비롯되었다는 진상을 알아내는데까지의 전개도 자연스럽습니다. 아오세와 유카리가 함께 살 때 이야기했던 내용을 복선처럼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따뜻한 가족 관계의 복원을 암시하는 마무리는 완전 제 취향이었어요. 저는 해피 엔딩을 좋아하니까요.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재이며 가족 관계 복원의 핵심인, 이른바 '노스라이트'를 끌어들여 빛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는 Y주택에 대한 묘사도 엄청납니다.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어요. 드라마화 된 영상물에서의 모습은 생각보다 작고 볼품없는 모양새라 실망스러웠지만요.



2020년 발표작인데, 아오세와 주변 인물들이 버블로 몰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특이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극초반을 무대로 하고 있는 탓으로, 이 시기가 무대인건 1930년대 일본에 잠깐 머물렀던 브루노 타우트와 등장인물들이 연결점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됩니다. 1930년대 당시 브루노 타우트를 어린 나이에 만난 뒤, 요시노 이사쿠는 타협없는 깐깐한 장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상황을 목격했던 90대의 야마시타 구사오가 살아서 아오세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시노 도타는 요시노 이사쿠의 손자라고 설정해도 되고, 야마시타 구사오의 증언도 일기나 편지 등의 형태로 남아있었어도 무리는 없었을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아오세가 버블 경제의 쓴 맛을 톡톡히 보았다는 설정을 위해 이 시기로 무대를 설정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아주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광의의 미스터리'로 볼 수는 있지만, 정통 추리 소설은 아닌 탓이 가장 커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만큼은 추리 소설인데, 진상이 드러나는건 뒤에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결국 주요 등장인물들의 증언이 전부니까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이 아오세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요시노 도타의 아버지 이사쿠와 아오세의 아버지가 구관조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다가 아오세의 아버지가 절벽으로 추락사했던 과거의 속죄를 위해서라는 설정부터가 그닥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요시노가 아버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3천만엔의 거금을 쓴다는건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딱히 대단한 애정을 품지 않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살아 생전 듣지 않았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거금을 쓴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지요.
등장인물들이 서로 인연을 더듬게 되는 이유도 '아오세', '요시노'라는 성이 특이하다는 탓이 큰데,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강했고요. 일본인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오세라면 모를까 요시노가 그렇게 특이한 성은 아니지 않나요? 유명한 규동 체인점 이름도 '요시노야'인데....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온갖 순위를 휩쓸었는데에도 불구하고, '2020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걸로 짐작됩니다.

브루노 타우트 비중이 너무 크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작 중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 타우트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부분 등은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타우트의 작품을 계속 찾아보게 만들게끔 잘 쓰여져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타우트와 그의 작품들이 이야기에 꼭 필요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요시노 이사쿠가 브루노 타우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장인이라는게 이 작품에서 유일했던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 이유인데, 자존심으로 버티는 장인이 딱히 그런 공예가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런 장인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가 Y주택에 남아 있던 덕분에 요시노 이사쿠의 과거가 일부 드러나게 되지만, 이 역시 사건을 밝히는데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스쳐지나가는 오카지마의 말이 진상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가 되지요. 탐정이 아오세에 대해 조사했다는 말이었는데, 아오세는 이를 통해 탐정을 이용하던 요시노가 전처 유카리를 직접 만났다는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유카리가 직접 요시노의 의뢰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요. 그 뒤 목적이 아버지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였다는건 아오세가 요시노로부터 직접 듣게 됩니다. 이렇게 진상은 등장인물들의 증언으로 밝혀져서, 추리도 무의미할 뿐더러 브루노 타우트 엮일 이유는 마찬가지로 없습니다. 브루노 타우트와 연인 에리카의 관계도 확대 해석한 느낌이고요.
이런 점을 보면, 작가가 큰 감동을 받은 브루노 타우트를 어떻게든 끌어들여 작품을 쓰려고 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네요.

아울러 전체 분량의 2/3가 지난 시점부터 클라이막스까지 이어지는, 아오세가 근무하는 오카지마 건축 설계 사무소 이야기는 앞서의 요시노 가족 실종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뿐더러, 너무 뻔했습니다. 대단치 않은 부정 - 택시비 대납 - 탓에 궁지에 몰린 오카지마가 사고로 죽은 뒤, 그가 남긴 설계안을 바탕으로 사무소 직원들 모두가 힘을 합쳐 공모안을 완성한다!는 내용은 철지난 열혈 청춘 드라마와 다를게 없으니까요.
게다가 아오세를 중심으로 한 직원들이 공모안을 완성시킨 뒤, 이를 공모전에 참여하는 대형 건축 사무소의 소장 노세에게 가져간다는 결말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설계안은 무상으로 넘기고, 이름 올려달라는 말도 안 할테니 나중에 오카지마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라고 말하게 해 달라? 대체 뭘 위한 노력이었을까요? 뻔한 열혈 청춘 드라마도 요새 이렇게 쓰면 욕을 먹을 겁니다. 이미 인생에서 쓴 맛을 여러번 겪었을 아오세가 한 말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네요. 이보다는 오카지마는 죽었지만 공모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남은 직원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 선정된다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후지미야 하루코의 유족이 오카지마를 지지했다는 설정은 남아있는 만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요.
오카지마의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었다던가, 마유미와 오카지마의 은밀한 관계 등은 구태여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가족간의 애정은 꼭 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조금 더 세련되게 풀어냈어야 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입부는 흥미로왔고, 건축 관련된 묘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가 만드는 메시지도 뭉클했고요. 그러나 브루노 타우트에 관련된 내용 비중이 지나치고, 클라이막스와 결말은 뻔하고 납득하기도 어려워 감점합니다.


덧글

  • 싱가폴 찰리 2021/08/10 11:01 #

    늘 잘보고 있습니다
    이번 리뷰는 저의 느낌과 상반되는군요 저는 이 작품을 요코하마 히데오 작품 중 제일 마음에 들었거든요^^
    다음 리뷰들도 기대하겠습니다
  • hansang 2021/08/10 16:00 #

    좋은 작품입니다만, 추리적 요소가 부족하고 후반부 전개가 뻔해서 아쉽더군요. 읽었던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 중 최고는 <<64>> 였습니다. http://hansang.egloos.com/m/402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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