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 에리카 오크런트 / 박인용 : 별점 4점 Book Review - 기타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 8점
에리카 오크런트 지음, 박인용 옮김/함께읽는책

자연 발생적인 언어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어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
프롤로그를 거쳐 존 윌킨스와 진리의 언어, 루드비크 자멘호프와 평화의 언어, 찰스 블리스와 기호의 언어, 제임스 쿡 브라운과 논리의 언어, 스타트렉의 클링온 등 연대순으로 주요 인공어와 왜 그 인공어를 발명했는지가 발명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소개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17세기부터 수학에 바탕을 둔 언어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과학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그동안 세계어였던 라틴어의 힘이 약화되면서 벌어진 일이었지요. 때문에 글자를 수 처럼 사용하거나, 말을 숫자로 바꾸거나, 아예 기호화하는 등의 아이디어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중, 언어를 수학화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네요. 예를 들어,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므로, 만약 동물 a가 2이고 이성적이라는 것 r이 3이면, 사람 h는 ar과 같아야 하며, 이 경우 2*3 즉 6이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각 항목별 '기본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문제였는데, 이를 진지하게 파고든게 존 윌킨스였다는군요. 윌킨스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모든 단어를 분류하여 계층화하였습니다. 자연 언어에서 '개'는 단순히 외우는 것이고, 그 발음도 임의로 정해진 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윌킨스 체계를 통해서는 개를 나타내는 단어는 개가 무엇인지를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단어가 짐승 > 타원형 두개골 > 순으로 되어있는 계층도 하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 분류도 지극히 임의적이고, 사용자가 개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하는 탓에 사용하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도 단어가 아니라 완성된 '언어'로 만들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지요.

윌킨스의 언어에 비하면 자멘호프의 에스페란토 어는 분명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한다는 목적에 잘 부합했으니까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언어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세계어가 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오그던이 영어 단어 갯수를 850개로 줄어 제안했던 '기본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동사를 없애고, Get, Put, Take. Come. Go, Have. Give 등의 기본 동사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윈스턴 처칠이 팬이었던 등 꽤 인기를 끌었었지만, 실제 사용할 때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니까요. 하긴, 숙어라던가 관용적 표현 없이 언어가 존재하기는 힘들 거에요.

찰스 블리스의 블리스 기호는 단순한 기호들을 조합하여 여러가지 의미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블리스가 중국 체류 시 배웠던 한자 조어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습니다. 해석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한 등 문제도 많았지만, 아예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장애아들에게 굉장히 효과적이어서 온타리오 장애아 학교 등에서 아주 잘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찰스 블리스가 자존감이 낮은 정신병자였던 탓에, 지루한 법정 싸움으로 인해 이 기호를 활용한 교습법이 널리 퍼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는 상당히 유용했을테고, 온갖 이모지 사용이 일반화된 지금에 더 잘 먹힐 방식인데 아쉽네요.

제임스 쿡 브라운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할 수 있으므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과학적인 객관성을 지닌 언어 '로글랜'을 발표했습니다. 소개된 내용을 보니, 수학과 논리학에 기반을 둔 언어로, 일반 언어라기 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가깝더군요. 그래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일반적인 언어처럼 사용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너무 컸습니다. 로글랜은 창시자 브라운에게서 벗어난, 비영리 단체 논리 언어 집단이 이끄는 '로지반'이라는 언어로 발전해 나갔는데, 어렵기는 별 차이가 없고요.

마지막에는 스타트렉의 '클링온'이 소개됩니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소수의 열광적인 팬들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언어로, 특별한 목적이 없고, 유용하지 않아도 언어는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입니다. 저자는 클링온의 존재 이유를 '유희' 라고 단정하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아울러 이런 재미 요소가 앞으로는 신규 언어의 필수 조건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드네요.

이렇게 대표적인 인조어 외에도 언어로 여성의 관점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라아단'과 같이 파생된, 관련된 인조어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으며, 수많은 인조어들의 목록과 번역 예로 구성된 부록도 풍성합니다.
저자가 인공어들을 직접 배워서, 그리고 그 인공어들의 학습 코스나 세미나 등에 직접 참석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언어인지에 대해 보다 생생하게 제공해주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고요. 덕분에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그래도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로글랜, 로지반과 같이 지나치게 어려운 언어는 그 사용 방식이 책만 읽어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으며, 찰스 블리스의 블리스 기호는 그 기호에 대한 설명보다는 정신병자 블리스의 인생 이야기가 더 길게 소개되는 등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책이었어요. 회사에서 UX 업무를 담당하는 저에게는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됩니다. 딱딱하고 어렵게가 아니라 저자의 체험 중심으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쓰여져 있기도 하고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상호 작용 (인터랙션) 등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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