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4) :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창작 or 번역

제가 썼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중 한 편입니다.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3) : 인도에는 없지만, 추리 소설에는 많은 커리와 카레에 이어 소개해 드립니다.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료 중 하나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요. 비옥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초승달 지역은 보리의 기원지라서 이 지역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보리와 밀로 만든 빵이 주식이었는데, 우연히 빵이 물에 젖어 발효된걸 먹어본 게 맥주의 시초가 되었다고 하네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 문학이라는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맥주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맥주가 중요했어요. 음식을 대표하는 상형문자가 '맥주'와 '빵' 이었을 정도로요. 심지어 피라미드를 맥주와 마늘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시원한 맥주와 강장제인 마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에 냉장고는 없었겠지만, 시원한 맥주가 더위에 최고라는 건 이렇게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명백한 사실임에는 분명합니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린 뒤 맥주 한 잔은 그 누구도 거부하기 힘들죠.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닷쿠 & 다카치 시리즈 중 한 편인 <<맥주 별장의 모험>> 에서, 주인공 닷쿠 일행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불의의 사고로 무더위 속에서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별장에 몰래 들어간 뒤, 냉장고에서 대량의 맥주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연히 유혹을 참지 못했던 일행은 긴급 피난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했지요.
사실 이런 상황에서 맥주 음주는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더위로 땀을 많이 흘려 체내 수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알코올의 이뇨작용까지 더해지면 탈수 현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젊은 닷쿠 일행에게는 별 문제 없었고, 여유를 찾은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텅텅 빈 별장 1층에 싱글 베드 한 개만 놓여 있는 특이한 별장의 상황에 대해 각자 추리를 꺼내어 놓기까지 합니다.
같은 작가의 단편 <<맥주집의 문제>> 도 닷쿠 일행이 빈집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를 마시며 그 이유를 추리하는 내용인데, 참 맥주를 좋아하는 일행이에요.


<<단행본 표지에서도 맥주를 들고 있는 닷쿠 일행>>

이 작품들 속에서 닷쿠 일행이 마시는 건 냉장고 속 캔맥주였는데, 캔맥주보다는 병맥주 쪽이 조금 더 시원한 느낌을 전해 줍니다.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즐겼던 맥주도 Remmers 병맥주였지요. <<독사>>에서 상표명이 직접 언급됩니다.


<<Remmers 병맥주와 함께 하는 네로 울프>>

병맥주는 특히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병맥주를 꺼내어 "퐁" 소리와 함께 뚜껑을 열고, 살짝 얼음이 낀 컵에 거품이 올라오도록 따라 마시는 방법이 유명한데, 아마노 세츠코의 <<얼음꽃>>에는 이를 이용한 살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노 쿄코의 남편은 냉장고 속 맥주를 냉동실에 얼려 놓은 잔에 따라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쿄코는 이를 이용해서 원격으로 남편을 독살하고 자살로 위장하는데 성공합니다. 청산가리를 미리 잔에다 발라 놓았던 거지요.
그런데 이 방법은 시원해지기야 하겠지만, 과학적으로는 맥주의 맛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하네요. 맥주의 맛있는 적정온도를 더 떨어트리고, 잔에 결로가 쉬워서 물방울에 따라서 맥주를 따를 때 거품 발생의 차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더위 속에서 즐기는 시원한 맥주만 맛있는 건 아닙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테미스의 검>> 속 사코미즈처럼, 25년이나 수감 생활을 한 뒤 맥주를 마신다면 어떨까요? 맛이 없을 리가 없겠지요. 탄산 때문에 받는 청량함을 "마치 목에도 미각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라며 "이건 액체 모양을 띤 황금이다"라고까지 칭송하는데, 그 마음이 너무나 와닿네요. 영화<<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나눠준 시원한 맥주를 나눠 마시는 수감자들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그들은 그때 자유를 느꼈었지요.


<<쇼생크 탈출, 참고로 이들이 마시던 맥주는 Stroh’s Bohemian입니다.>>

앤디의 얼음통 속 맥주나 사코미즈가 편의점에서 구입했던 맥주처럼 시원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분위기가 함께 한다면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M.C. 비턴의 해미시 멕베스 순경 시리즈의 주인공 해미시 순경처럼요. 그는 서랍에 맥주를 넣고 꺼내 마시곤 합니다. 미국 영화 속 탐정들이 책상 서랍에서 술병을 꺼내 드는 장면에 매료된 탓으로, 이렇게 맥주를 마시면 옛 하드보일드 탐정과 자신이 같다는 동질감에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라네요. 맛 보다 분위기가 중요한 셈이에요.
스티븐 킹의 <<여름 천둥>> 은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모든 것들이 오염과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세상을 무대로 한 작품으로, 주인공 로빈슨은 버려진 개 간달프와 함께 살아갑니다. 근처 고급 주택가에 홀로 남은 팀린과 가끔 만나면서요. 결국, 팀린은 후유증이 심해져 죽음을 앞두게 되고, 자살할 준비를 마친 뒤 로빈슨을 부릅니다. 이때 둘은 미지근한 버드와이저를 나누어 마시지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맥주의 제왕이라면서요. 이거야말로 분위기에 취해 마신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간달프가 <<사냥개 탐정>> 류몬 다쿠의 파트너이자 애견 조처럼 버드와이저를 좋아했다면, 자리가 더욱 빛났을 텐데 조금 아쉽군요.


아쉬운 게 하나 더 있다면, 이 자리에는 버드와이저보다는 벨기에 맥주인 듀벨(Duvel)이 더 어울렸을 거라는 겁니다. 시원해야 맛있는 라거 계열의 버드와이저와는 다르게, 에일 계열 맥주는 10~15도 정도여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고, 그 중에서도 벨기에 맥주 듀벨이 적정 온도가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버드와이저도 겨우 구했던 로빈슨과 팀린에게는 선택의 여지는 없었겠지만요.

이렇게 분위기가 맥주 맛을 돋우어 줄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건 차가운 맥주입니다. 코로나로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시간이 많아진 요즈음이니, 맥주를 맛있게 따르는 비법인 ‘세 번 따르기’를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집에서 한 번 따라 해 보시고, 그 맛을 음미해 보세요. 네로 울프도 좋아하는 맥주를 전용 금도금 병따개로 딴 다음, 정확하게 거품을 맞춰 따라 마시곤 했다니, 미식가에게 검증된 방법인 셈입니다. 드시는 맥주에 잘 어울리는 잔도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세 번 따르기’
첫 번째 : 맥주병을 높이 들고 천천히, 다음에 세게 따라 거품을 만든다.
두 번째 : 거품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맥주와 거품이 1:1이 되면 병을 잔의 가장자리로 가져가 천천히 따른다. (거품이 잔보다 1cm 정도 높게 올라올 때 까지).
세 번째 : 거품이 잔보다 1.5~2cm 높아질 때까지 맥주를 조심스럽게 붓는다.
* 푹신푹신한 거품 맥주는 갓 따랐을 때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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