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잠수함 이야기들 - 10년 20일 / U-333

2차대전 당시의 잠수함 U보트에 관련된 책 2권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한 권은 U보트, 독일 잠수함 전대의 사령관이자 훗날 해군 총 사령관, 그리고 히틀러의 뒤를 이은 3제국 최후의 총통으로 연합군에 항복한 칼 되니츠 제독의 회고록 “10년 20일”이고 다른 한 권은 U보트의 함장 피터 크레머의 “U-333”입니다.

같은 시기, 같은 분야의 전투에서 역량을 발휘한 두 명의 회고록으로 각각의 재미도 있지만 비교해서 읽는 재미도 뛰어나더군요. 10년 20일은 사령관이었던 되니츠 제독답게 전쟁 자체가 스케일이 크게 그려집니다. 잠수함을 한척 단위의 전투가 아닌 여러 척으로 그룹을 묶어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이른바 “늑대떼 전술”을 비롯, 각 바다를 쪼개서 지역별로 함정을 배치하며 활동기간을 늘리기 위한 “젖소” 잠수함의 도입 등 전략적인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이에 반해 피터 크레머 함장의 “U-333”은 실제 전투에서의 활동들, 수송선단의 추격 및 공격에서의 회피, 폭뢰공격으로 침몰해 가는 함정의 운영 등 실질적 전투 활동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전투 이외에도 잠수함의 성능이나 독일의 여러 공격 무기 (어뢰 및 대공포 등)와 연합군의 대잠무기, 잠수함 건조 방법 및 훈련 방법 등 잠수함 부대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더 마음에 들더군요. 읽고 나서는 되니츠라는 독일 군인에게 어느 정도 매료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정말 세계 전사에 기록될 만큼 유능한 희대의 명 제독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자가 누구이건 맡은 바 명령에 충실하게, 설령 그 상황이 타개하기 어려울 지라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난국을 타개해 나가며 아울러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진정한 독일 군인의 표상이랄까요? 처칠이 언급했듯이 되니츠에게 개전 초기 운영 가능한 U-보트가 100척만 더 있었더라면, 아니면 종전 직전에 실전 배치 되기 시작했던 최신예 잠수함 XX1, XX2, 발터 잠수함 등이 그에게 1년이라도 먼저 보급되었더라면.. 하는 가정까지 해 볼만큼 매력적인 인물의 험난한 시기의 회고록이었습니다. 물론 피터 크레머 함장의 회고처럼 이미 1944년 겨울부터는 잠수함 전대에 미래란 없었다는 것이 정확했겠지만요.

세세한 재미를 따지자면 실제 전투상황이 강조되는 한편의 영화 같은 “U-333”쪽이 더 낫겠죠. 동기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종전까지 포로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운좋은” 함장 피터 크레머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과는 좀 떨어지는, 생명력이 좀 강한 함장이어서 그런지 (에이스들은 거의 죽거나 포로가 되어 버렸죠) 전투가 뭔가 격침을 시킨다던가 하는 호쾌한 맛은 떨어지지만 영화 “U보트”에서 볼 수 있었던 실제 연합군 대잠무기에 대한 공포, 잠항과 부상을 반복하며 벌어지는 긴장감, 잠수함 고장에 따른 위기 등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가 이 책에서 많은 부분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뒷부분에는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요약되어 부록으로 실려 있어서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더 컸습니다.

약 820척의 U보트 중 718척이 침몰되었고 39,000명의 우수하고 잘 훈련된 승조원 들 중 32,000명이 목숨을 잃은 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손실을 기록한 독일 잠수함 부대, 그리고 그 부대원들이 끝까지 희생을 다하며 충성한 해전사 희대의 명 제독 칼 되니츠와 실제 승조원으로 2차대전 개전부터 종전까지 활약한 U보트 함장 피터 크레머의 회고록이니 만큼 2차대전에 관심있으시다면 꼭 읽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종전과 동시에 연합군에게 인수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침시킨 독일 잠수함 부대원 들 중 일부가 최신예 함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부대원, 기술자들과 더불어 히틀러의 비밀 자금과 함께 어딘가에서 세력을 키운다는 “라스트 바탈리온” 같은 이야기가 꿈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영화 “U보트”나 다시 한번 구해 봐야 겠습니다.

PS : 되니츠도 인정했지만 히틀러라는 인물의 카리스마와 인물 장악력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었던 것 같더군요. 그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되도록 떨어져 있어야 했다.. 고 까지 인용했을 정도거든요.
by hansang | 2004/05/09 01:12 | 전쟁관련 독서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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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4/05/09 01:46
되니츠 제독 저서는 저도 가지고 있는데 수년째 완독을 못하고 있습니다. 뭔가 읽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거 같아서 손이 잘 안가더군요.
Commented by hansang at 2004/05/09 01:50
rumic71 : 그래도 한번 잡으니 쭉쭉 읽게 되더군요. 꼭 읽어보시고 리뷰 올려주세요^^
Commented by leiness at 2004/05/09 03:26
흥미로운 책들이군요. 한쪽은 사령관의 시각에서 다른 한쪽은 실전 부대장의 시각에서 같은 시기 같은 전장을 본다는 것도 색다른 느낌일 듯 합니다.
Commented by JOSH at 2004/05/09 12:33
병사 입장에서 쓴 책까지 읽으면 트릴로지 이군요.. ^^
그 유보트 비밀일기 인가... (어디 뒀더라...)
알맹이가 없어보이긴 하지만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역시 실전레벨에서의 시점을 볼 수 있는게 재밌음...
Commented by hansang at 2004/05/09 17:56
leiness : 네, 비교해서 읽는 맛이 괜찮은 두편입니다.
JOSH : 와.. 그런 책이 있습니까? 한번 꼭 읽어봐야겠네요.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4/05/09 19:16
되니츠 자서전은 어디까지나 '자서전' 이니까요. 잠수함 얘기를 그렇게나 하지만, 실상 폴란드전 개전 이전까지 해군에게 전쟁은 적어도 10년은 뒤 이야기였습니다. 히틀러가 당시 레더 제독에게 그렇게 언질을 내렸기에, 거기에 맞추어서 안정적인 해군력을 구축하는 것이 당시 목표였습니다. 잠수함은 강력한 전력이긴 하지만 안정적인 전력하고는 거리가 머니까요.

개전 이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영국하고만 붙는다면 몰라도 독소전 개전 이후에는 당장 눈 앞에 효과가 보이는 전차 전투기 등등을 찍기도 바쁜 판에, 잠수함 건조에 자원을 배분할 여력 같은 건 독일에게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되니츠의 생각은 거창한 희망사항이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JOSH at 2004/05/09 19:19
http://www.yes24.com/home/pd.asp?SID=aAAkwyu9Q4Kx@8vgPjSqHz1Sm*wGNgkwtoYBIBih1w3qbfpP0DidCjd@a&AK=341635&TABID=0
이 책입니다.
역자에 주목...
Commented by rumic71 at 2004/05/09 23:28
더우기 영국과 손을 잡고 소련을 격멸하는 건 상당히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총통의 꿈이었지요.
Commented by 산왕 at 2004/05/10 04:14
대영제국쇠망사에서 말한 제국쇠망의 처칠책임론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라서^^
역시 총통과 손을..(어이;;)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4/05/10 10:48
제국 쇠망은 하르툼 이후 아프리카에 대한 정복에 나서면서부터입니다. 늘어가는 군비는 경제 전체를 좀먹었고 1차대전 이후 이미 경제는 개판 5분 전 상황이었으니, 설사 처칠이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 해도 쇠망이 약간 늦추어지기만 햇을 겁니다.
Commented by hansang at 2004/05/10 10:58
功名誰復論 / rumic71 / 산왕 : 흠.. 역시 토론의 여지가 많은 주제군요. 개인적으로 영국의 쇠락은 필연이었고, 독일의 승전 가능성도 제로라는데 동감합니다.
Josh : 꼭 구해봐야겠네요. 기대 만빵입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4/05/10 19:26
그건 영국보다 이탈리아에 해당되는 거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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