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 달팽이 - 정태원 엮음
추리소설 매니아이자 번역가로 잘 알려진 정태원 선생이 직접 엮은 정체불명의 환상문학 단편집입니다. 어느 앤솔로지를 번역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꽤 괜찮은 작품들과 작가들로 이루어진 선집이라 생각합니다.

목차를 보자면 :
프레데릭 브라운 -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
오거스트 덜레스 - 또 하나의 아이
로버트 블록 - 변심
레슬리 폴스 하트레이 - 주말의 손님
레이 브레드버리 - 장의사
헨리 슬레사 - 신의 은총
존 콜리어 - 특별 배달
패트리시아 하이 스미스 - 식인 달팽이
잭 요네 - 암코양이 미나
재럴드 커슈 - 바다로 가는 슬픈 길
브랫리 스트릭 랜드 - 묘비명
찰즈 보몬트 - 자장가
리차드 마티슨 - 나의 꿈꾸는 여자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상 13개의 작품들 중 개인적인 베스트 5는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 "변심", "신의 은총", "바다로 가는 슬픈 길", "나의 꿈꾸는 여자" 라고 생각됩니다. "식인 달팽이"는 스릴과 서스펜스 면에서는 괜찮긴 했지만 좀 뻔한 내용이었고 "장의사"는 공포와 기발함에서는 다른 작품에 뒤지지 않지만 결말이 약간 시시한 것 같아 아쉽게 리스트에서 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너무 길어서 아래 More기능으로 추가하였으니 참고를....)

도서출판 동숭동에서 발간한 정체불명의 앤솔로지의 한권으로 구입은 꽤 오래전에 했는데 이제야 독파하게 되었네요. 제법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만족도가 상당한 작품집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 적당하다고 보여집니다.

첫번째 작품인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은 거장인 프레데릭 브라운 작품입니다. 한 기묘한 피리 ("오보아"라고 하더군요)를 둘러싼 한 음악인의 집요함에 대한 묘사와 특히 "하메룬의 사나이"까지 인용한 반전이 무척 괜찮은 소품입니다.

두번째 작품 "또 한명의 아이"는 조금 동화적인 소재더군요. 한 그림속에서 환상을 본 노인이 결국 그림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인데 TV시리즈 같은 곳에서 보아왔던 소재라 그런지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세번째 작품 "변심"은 이런저런 앤솔로지에 가끔 소개되는 로버트 블록의 작품입니다. 한 청년과 시계수리공 노인, 그리고 노인의 병약한 딸을 둘러싼 이야기인데 마지막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공포소설로도 읽힐 수 있지만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인상적이더군요. 상당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네번째 작품 "주말의 손님"은 유명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극중 인물에게 위협받는다는 내용으로 두번째 작품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이미 보아왔던 약간은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그닥 참신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다섯번째 작품 "장의사"는 유명한 레이 브레드버리의 단편입니다. 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장의사와 그에게 놀아난 시체(?)들의 복수극으로 기괴하고 섬뜩하긴 한데 뭔가 조금 아쉽기도 하더군요. 왠지 클라이브 바커가 조금 연상되기도 한 작품이었습니다.

여섯번째 작품 "신의 은총"은 꽤 유명한 작가 헨리 슬레사의 단편으로 한 신부와 경마 도박꾼의 약간 기묘한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승부에서 이긴다!"라는 이유로 성당에 계속 헌금하는 도박꾼과 그것을 말리면서도 결국 세속적인 감정에 흔들리는 신부의 아이러니컬 하면서도 유머스러운 묘사가 상당히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일곱번째 작품 "특별배달"은 한마디로 영화 "마네킹"의 원안쯤 되는 작픔입니다. 마네킹에 연정을 느끼는 한 청년에 대한 집요한 묘사는 돋보이지만 그닥 재미도 없고 튀는 부분도 없는 작품이네요.

여덟번째 작품 "식인 달팽이"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 여사의 작품이긴 하지만 스티븐 킹 작품이라고 해도 통할만큼 여사 작품치고는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입니다. 식인 달팽이와 한 과학자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데 "괴물"과도 같은 존재와 미약한 투쟁을 벌이는 인간에 대한 묘사는 스티븐 킹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바로 그것이더군요. 거장의 작품답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아홉번째 작품 "암코양이 미나"는 이 작품집 중에서 가장 처지는 작품입니다. 뻔한 소재에 뻔한 결말.... 반전도 그닥 없고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로 보여집니다.

열번째 작품 "바다로 가는 슬픈 길"은 현대판 "죄와 벌" 같습니다. 삶에 지친 한 남자가 수금원의 독촉에 시달리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항상 꿈꿔왔던 바다로의 도피를 시도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을 다루는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문학적 수준도 상당한 편이고요. 왠지 다른 순문학 단편선에 실려야 할 작품이 잘못 온 것처럼 약간 쟝르가 맞지 않는 느낌도 주지만 완성도는 굉장히 뛰어난 작품입니다.

열한번째 작품 "묘비명"은 남북전쟁 후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한 청년이 느끼는 한 묘비에 대한 의문과 공포를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마무리 한 소품으로 그다지 언급할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열두번째 작품 "자장가"는 한 어머니의 광기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소품입니다. 역시 다른 곳에서 많이 인용된 소재라 그런지 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마지막 작품 "나의 꿈꾸는 여자"는 필립 K 딕과 쌍벽을 이룬다는 (하지만 들어본 적은 없는) 리차드 마티슨의 SF적인 단편입니다. 예지능력을 가진 여자를 이용한 협박자가 협박에 실패한 분노로 여자를 죽이는데 여자가 죽어가며 그 협박자가 죽게되는 상황을 예언한다는 내용으로 짧지만 인상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by hansang | 2004/11/06 23:37 | 추리 / 호러 관련 독서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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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4/11/07 00:20
오보에도 아니고 오보아입니까...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지는...
Commented by hansang at 2004/11/07 01:08
오보는 이태리어로 oboe, 프랑스어로 hautbois(오보아), 독일어로 Hoboe(오보에)로 부른다는군요... ^^;
Commented by poirot at 2004/11/07 01:13
'식인 달팽이'는 다른 곳에서 읽었는데 나름대로 잼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단편들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정태원씨가 "편역"했다고 달고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그분이 편역한게 아닐겁니다.
Commented by hansang at 2004/11/07 13:27
poirot : 저도 다른 책에서 읽었던 작품이었죠. 그나저나 정태원씨는 출처만이라도 좀 밝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Commented by 체셔 at 2004/11/07 16:37
아 이 책 옛날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꽤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Commented by hansang at 2004/11/07 17:41
체셔 : 꽤 괜찮은 작품들만 모아놓아서 다시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케인즈 at 2004/11/07 20:05
동일한 책을 '나의 꿈구는 여자'라는 제목의 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동숭동이구요...'식인 달팽이'라는 표제로도 출간되었었나 보네요. 환상 미스테리 걸작선이라 그런지 결말이 모호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식의...

저의 베스트는 브라운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 브래드베리의 '장의사', 제럴드 커슈의 '바다로 가는 슬픈 길' 정도 되겠네요. 특히 '아이네....'는 축축한 몽환적 분위기가 일품이었습니다. '바다로...'는 너무 가슴 아픈 작품이고요..
Commented by hansang at 2004/11/07 21:15
케인즈 : 아 그러시군요.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네요^^ 베스트가 거의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Commented by 산왕 at 2004/11/08 00:49
한 번 찾아봐야겠군요^^
Commented by 남쪽계단 at 2004/11/08 17:52
전 "변심"이 가장 기억에 남더군요. 마지막 한 줄로 정확하게 완성되는 이야기에 언제나 마음이 끌린다는...
Commented by hansang at 2004/11/08 18:12
산왕 : 요새 찾기는 좀 어려운 책이라... 도서관 같은 곳에는 있을 것 같네요.
남쪽계단 : 네.. 마지막 한줄에 뜨끔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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