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 관 - 애거서 크리스티 / 신용태
삼나무 관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용태 옮김/해문출판사

엘리노어 캘리슬은 어느날 부유한 친척인 로라 고모가 별채의 딸 메리 제러드에게 유산을 물려줄 지도 모른다는 괴문서를 받고 약혼자인 로디와 함께 헌터버리 저택으로 떠난다. 하지만 갑자기 로라 고모가 발작을 일으켜 급사하고 엘리노어는 전 재산을 상속받게 되지만 약혼자 로디가 메리에게 반해 약혼이 취소되게 된다.

결국 헌터버리 저택을 팔고 짐들을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방문한 엘리노어는 별채를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메리와 메리와 친했던 고모의 전 간호부 홉킨스 양에게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대접하지만 메리가 그것을 먹고 사망하게 되며 독살범으로 몰려 체포된다.

그녀의 무죄를 확신하던 로라 고모의 주치의 피터 로드는 포와로에게 사건의 진실을 밝혀 줄 것을 요청하여 포와로가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중후반 장편입니다. 일단 이 작품은 포와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엘리노어 캘리슬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엘리노어의 심리상태를 1인칭으로 묘사하기도 해서 전체적으로 약간 독특한 분위기를 가져다 주네요. 중반부까지는 이렇게 엘리노어를 중심으로 한 사건 중심의 전개, 후반부는 주로 포와로의 활약을 묘사하는데 이러한 전개방식은 앞부분에 모든 사건이 서술되며 포와로는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 하나 없이 오로지 독자와 똑같은 공평한 조건에서 추리를 시작하므로 본격 추리물에 딱 맞는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종반부에서는 실제 법정에서 배심원들을 상대로 역전극을 펼쳐보이는 내용으로 포와로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법정 드라마" 적인 요소가 강해서 이래저래 독특한 느낌을 많이 전해 주는 군요.

추리적인 부분에서는 작은 단서만을 가지고 진상을 꿰뚫어보는 포와로의 추리가 빛을 발하는 작품입니다. 서술도 확실하고 명확해서 마음에 듭니다. 특히 법정물 답게 모든 증거가 제출되며 그것을 뒤집는 증거들 역시 이론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이해가 쉬우면서도 합리적이라 좋았습니다. 진상과 진범이 밝혀지는 부분에서의 임팩트도 상당한 편이고요. 하지만 포와로가 "외국에 있는 많은 친구" 들의 도움을 받아 단서를 모으는 부분은 뭔가 현실성이 떨어지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전형적인 여사님 특유의 부르조아 숙녀인 엘리노어 캘리슬이라는 캐릭터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여자이고, 오히려 착하고 근면한 메리 제러드가 더 호감이 가는데 메리가 피해자가 되는 이야기 전개는 아쉽더군요. 여사님 작품은 재미도 있고 좋아하지만 좀 부르조아-귀족 중심의 편향적인 사고 방식이 자주 옅보이는 것이 시대적인 격차를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사님의 단편은 굉장히 좋아해서 많이 접하긴 했지만 장편도 최근들어 연달아 몇편 읽어보니 분위기도 묵직하고 여러 서술이나 묘사, 전개방식이 다 독특하고 짜임새 있어서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읽어도 추리적인 가치는 여전히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생각되네요.
by hansang | 2005/04/17 16:00 | 추리 / 호러 관련 독서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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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5/04/17 21:57
마지막 부분의 구성이 심히 불쾌하지만... 뭐 여사 본인이 이혼녀이니까.
Commented by rumic71 at 2005/04/17 22:09
생각해보면 '0시를 향하여' 에서도 엉뚱하게 남녀를 '정리'해버려서 불쾌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군요.
Commented by 글틀양 at 2005/04/18 01:38
읽은 추리 소설 감상문이 나오면 괜히 스포일러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난답니다... 하지만 참아야 겠죠. 귀족, 부르조아틱한 것은 애거서야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이니깐요.... 뭐 어쩔 수 없죠.
Commented by hansang at 2005/04/18 02:43
rumic71 : 그렇죠?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시대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죠.
글틀양 : 저도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추리소설이다보니 등장할때가 있지요^^
Commented by 알센백작 at 2005/04/29 00:52
애거서 여사는 생전에 다작을 했듯 상당히 다채로운 스타일들을 써왔던거 같습니다..
삼나무관 같이 법정물도 존재하구요...
클래식한 추리소설로 편안하게 다가오는 애거서 여사의 작품들은 추리소설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Commented by hansang at 2005/04/29 13:03
알센백작 : 역시 "여왕님" 답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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